지난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 떠 있는 중국발 기구 밑으로 요격을 위해 출동한 전투기가 날고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발 기구 사건으로 미-중 관계가 더 경색된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 북부 휴런호 상공에서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격추당했다. 미국과 캐나다 상공에서 9일 만에 네 번째이자 사흘간 연속된 비행체 격추다. 빈발하는 비행체 출현의 배경과 긴장 고조 가능성을 놓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12일 오후 2시42분(현지시각)에 오대호 중 하나인 휴런호 상공에서 자국 공군 F-16 전투기가 약 6㎞ 높이로 날던 비행체를 미사일로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비행체를 띄운 국가, 비행체의 정확한 성격과 제원 등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시엔엔>(CNN)은 이 비행체는 8각형 모양이었고, 비행 고도가 민간 항공기들을 위협할 수 있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격추했다는 관리들 말을 전했다. 이 비행체는 전날 몬태나주 상공에서 미군 방공망에 처음 포착됐다. 항공 당국은 민간 항공기의 이 지역 상공 비행을 금지했지만, 당일 출격한 전투기는 비행체 발견에 실패했다. 이 비행체는 이튿날 몬태나·위스콘신·미시간주 상공에서 다시 레이더에 잡히면서 격추당했다. 미국 국방부는 비행체가 “민감한 안보 관련 시설” 근처 상공도 지나갔다고 설명했다.
미국 공군은 앞선 4일 미국 본토를 동서로 가로지른 뒤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던 중국 기구를 격추했다. 이어 10일에는 알래스카주 상공에서 발견된 비행체를 미사일로 떨어뜨렸고, 11일에도 캐나다 북부 유콘준주에서 캐나다 공군과 함께 출격해 다른 비행체를 격추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인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앞바다 상공에서 격추된 대형 기구만이 중국이 보낸 것으로 확인된 상태다. 백악관은 10일 격추된 비행체는 작은 자동차 크기였다고만 설명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 비행체가 그 이튿날 격추당한 비행체처럼 원통형이었다고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한테 브리핑을 받았다며, 정보 당국은 10·11일에 격추된 것들 역시 기구로 판단하고 있다고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상공에서 사흘 연속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격추되며, 이를 누가 띄웠고 그 용도가 무엇인지가 핵심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것들 역시 중국발이고 정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미-중 관계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4일 격추당한 버스 3대 크기의 대형 기구는 자국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기상 관측 등 민간 연구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군사적 목적의 정찰 기구라고 단정하는 중이다. 미국은 수중 수색까지 벌이며 이 기구의 주요 부분을 수거해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주장대로 군사적 정찰을 한 근거가 확인되고 구체적인 증거가 공개되어도 파장이 커질 수 있다.
비행체들이 갑자기 자주 발견되는 이유도 풀어야 할 의문이다. 중국발 기구의 영공 침입으로 논란이 커진 뒤 미국 국방부는 중국 기구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세 번, 조 바이든 현 행정부 초기에도 한 번 미국 영공에 잠시 침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또 지난 수년간 중국 기구들이 40여개국 상공에서 20여 차례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에 비추면, 불과 9일 만에 기구를 비롯한 비행체가 4개나 발견돼 격추 대상이 된 것은 빈도가 매우 높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기구의 영공 침입으로 질타를 받자 비행체를 적극 탐지해 대응하려고 나선 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북미항공우주방어사령부는 중국 기구의 영공 침입 이후 전보다 작은 물체도 식별하도록 레이더 기능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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