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미국을 방문 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다음달 26일(현지시각)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계기로 “한-미 동맹의 대북 핵 억제 실행력을 질적으로 한층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7일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 방미의 핵심 의제에 대해 이렇게 밝히면서 “미국 당국자들은 대북 확장억제 공약이 굳건함을 다시 분명히 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전략자산 전개와 연합훈련이 미국의 방위 공약에 대해 한국 국민이 신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핵 사용 기획이나 집행 등의 절차에 한국의 참여를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보다 효과적인 (확장억제) 작동 메커니즘 도출을 위해 상당히 밀도 있는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김 실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안보’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며 “안정적 공급망 구축, 원자력, 우주, 청정에너지 등 첨단기술 분야의 성장 동력을 함께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 등 미국의 산업 정책 이행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불공평한 대우나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에 직면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긴밀히 소통해 필요 조치를 모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 논란에 대해 정상회담에서도 논의하겠다는 취지다. 또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투자가 제한되고 미국의 수출 통제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예상되는 것에 대해서도 협의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도 반도체법 관련 영향이 동맹국에 어떤 영향 미칠지 상당히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런 맥락에서 좀 더 영향 분석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달라는 취지의 언급도 있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원전 수출에 대한 미국의 협력도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을 방문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7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한국이 쿼드 실무그룹에 참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쿼드에 우리가 아직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쿼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실무그룹 참여를 적극 가속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김 실장과 설리번 보좌관의 면담에 대해 “한-미 동맹 70년을 기념하는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대해 논의했다”며 “설리번 보좌관은 한국과 일본이 (‘강제동원 해법’ 발표로) 역사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증진의 문을 연 역사적 돌파구를 환영했다”고 밝혔다. 또 “두 사람은 세계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공조 필요성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정상회담에서 중국 견제나 러시아에 대한 압박 강화 등에 초점을 두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은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방안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윤 대통령의 미국 일정에 대해서는 다음달 26일에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이 진행되고, 앞뒤 일정을 합쳐 사흘간 워싱턴에 머물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한-미 경제 협력과 관련해 다른 도시도 방문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윤 대통령이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환영 행사에 참석한 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단독 회담 및 확대 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주재할 것으로 보이는 오찬, 당일 저녁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익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 등이 미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게 윤 대통령 부부를 초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미 파트너십은 우리 경제와 시민들에게 혜택을 주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억지력을 강화하면서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한국은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