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미국 위스컨신주 커노샤의 트래비스 킹 이병 할아버지 집에 그의 사진이 놓여 있다.커노샤/AP 연합뉴스
북한이 판문점 견학 중 자진 월북한 미군 이병 트래비스 킹이 망명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틴 메이너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16일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킹 이병이 학대와 인종 차별 때문에 월북했고, 북한이나 제3국 망명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우리는 그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킹 이병의 안전한 귀환에 전념하고 있다”며 “국방부의 우선순위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모든 이용 가능한 채널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국방부의 입장은 북한의 발표와 상관없이 킹 이병 송환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진 월북하고 망명 의사까지 밝혔다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그만큼 킹 이병의 송환 조건을 까다롭게 만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송환을 포기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국 병사를 적성국 수중에 남겨둘 수 없다는 미국의 원칙은 내년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환 노력에 소극적일 경우 ‘북한 주장을 수용해 미국인 송환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미국의 어정쩡한 입장은 킹 이병의 신분에 대한 미국 국방부의 입장에서도 엿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 국방부가 킹 이병을 전쟁포로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과 북한이 기술적으로는 전쟁 상태이기 때문에 전쟁포로로 규정하면 합법적으로 송환 요구를 제기하기가 쉽다. 하지만 킹 이병이 민간 복장을 한 상태에서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쟁포로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미군 당국의 판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킹 이병 가족은 그가 월북 전 통화 때 불안한 정신 상태를 보였다면서 미국 정부의 송환 노력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킹 이병 삼촌은 최근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조카가 군에서 인종 차별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감됐다가 풀려난 킹 이병과 통화한 적이 있다며 “내가 ‘괜찮냐’고 물으니까 킹은 ‘그들이 날 죽이려 한다’며 ‘그들은 인종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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