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2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지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엔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하는 총회 결의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한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유엔은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본부에서 총회를 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다. 요르단이 주도한 이날 결의안에 120개국이 찬성했고, 반대는 미국·이스라엘과 유럽 일부 국가, 몇몇 태평양 도서국 등 14개국에 불과했다.
한국 등 45개국은 기권을 선택했다. 황준국 유엔대표부 한국 대사는 총회에서 “결의안에 하마스를 규탄하고, 하마스의 인질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며 기권 이유를 설명했다.
캐나다는 앞서 하마스의 테러공격을 명확하게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찬성 88표를 얻는데 그쳐 수정안 채택에 필요한 찬성 3분의 2에 미치지 못했다. 유엔 총회 결의안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상당한 정치적 무게가 실린다.
이번 총회 결의안은 지난 25일 안보리에서 미국이 낸 ‘일시적 전투 중단’ 결의안은 중국·러시아가 반대하고,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은 미국 등이 반대해 무산된 뒤 이뤄진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표결 결과에 대해 “격렬한 폭격 등으로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를 지지하는 미국이 숫자상으로는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27일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하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전쟁을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울려 퍼졌다. 수십만명의 시민이 28일 유럽·중동·아시아 등의 주요 도시에서 거리에 나서 가자지구에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에 나서고 있는 이스라엘을 향해 공격을 중단하고 휴전에 나서라고 요구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영국 런던에서는 5만~7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시내 중심가를 행진하며 영국 정부가 휴전을 위해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강대국들이 지금 충분히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 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은 살아갈 권리가 있고 인권이 있다. 그들은 하마스가 아니다”며 “우리는 휴전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 지역을 특별 시위금지 구역으로 설정하는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뤄졌지만, 경찰은 시위에 참여한 9명을 경찰관 공격 및 공공질서 파괴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충돌 이후 치안 불안 등을 이유로 시위를 금지하는 중에도 파리 등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에는 녹색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몇몇도 참가했다. 파리 남쪽 외곽의 코르베유 에손의 부시장 엘사 투르는 “당장 총격을 멈춰야 한다. 여자와 어린아이, 남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에는 “우리의 인류애는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도 나부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전쟁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며 “민간인 몇천명이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말을 안하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부 마르세유에서도 몇천명이 모여들어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21명을 체포했고, 1350명에게 시위금지 위반에 따른 벌금 135유로(19만원)을 매겼다고 밝혔다.
이밖에 독일 베를린, 스위스 취리히, 덴마크 코펜하겐, 스웨덴 스톡홀름,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고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중동과 아시아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미국 대사관 주변에 대규모 시위대가 모여 휴전을 요구했으며,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직접 시위대 앞에서 ”이스라엘은 점령군이며 하마스는 테러단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을 외치면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살해를 돕지 말라”고 외쳤다. 미국 뉴욕에서는 시위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찰이 브루클린 다리를 잠시 폐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