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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라틴 아메리카] 대선 결선 임박 브라질

등록 2006-10-23 18:25수정 2006-10-24 11:10

상파울루 중심부에 있는 노동자당(PT) 중앙당사 앞에 룰라 대통령의 대형 선거 포스터가 걸려 있다.
상파울루 중심부에 있는 노동자당(PT) 중앙당사 앞에 룰라 대통령의 대형 선거 포스터가 걸려 있다.
세계 4번째 불평등국가 소용돌이
거대 경제잠재력뒤 빛과 그림자
빈곤층 지지업고 룰라 앞서지만
화려한 상파울루엔 넘치는 반감
“룰라는 희망” ― “그냥 싫다” 서민―부유층 골깊은 갈등

브라질 경제의 심장인 상파울루는 이 나라를 말할 때 삼바와 축구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듯 하다.

중심가 파울리스타 대로엔 대기업과 은행들의 고층빌딩과 고급 백화점이 즐비하다. 전세계의 명품들을 모아놓은 남부 파리야리마 거리 이과테미 백화점 매장에선 화려하게 차려 입은 부유층들의 쇼핑이 한창이다.

29일 대선을 열흘 남짓 남겨놓은 상파울루 거리에서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차가웠다. 룰라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전국적 여론조사 결과와는 대조적이다.

상파울루 대학 경제학과의 시망 다비 시우베리 교수는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고 있으면서도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만 늘리면서 경제성장이 방해받고 있다.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빈곤층 지원정책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룰라는 도둑이니까 싫다. (그의 부정부패가 과거 정권에 비해 작다해도) 닭 한마리를 훔치나, 은행을 터나 다 도둑인 건 똑같다.” 운전수로 일하는 오스바우두(55)는 룰라 대통령과 노동자당(PT)의 부정부패 스캔들을 맹비난했다.

그러나, 전국 여론조사에선 룰라 대통령이 경쟁자인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의 제라우드 아우키민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벌리며 앞서나가는 모양새다. 대부분의 이곳 전문가들은 룰라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야기한다.


하루 일과를 마친 상파울루 시민들이 기차에 몸을 싣고 저소득층 거주지인 북부로 퇴근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상파울루 시민들이 기차에 몸을 싣고 저소득층 거주지인 북부로 퇴근하고 있다.
11일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의 조사에서 룰라는 51%의 지지율로 40%에 그친 아우키민 후보를 11%포인트 앞서나갔다. 같은 시점에 발표된 복스포퓰리의 조사에서도 룰라는 56%, 아우키민 44%로 룰라가 12%포인트 앞섰다. 18일엔 룰라의 지지율이 60%까지 올랐다는 조사도 나왔다. 지난 1일 대선 1차투표에서 7%였던 두 후보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브라질의 엄청난 빈부격차와 소외된 농촌지역 빈곤층의 룰라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빼곤 설명할 수 없다.

1억8천만 인구 중 과반수를 넘는 빈곤층의 표가 룰라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 빈곤계층, 특히 룰라의 사회보장 프로그램 혜택을 받은 농촌 빈곤계층은 룰라에 열광하며 표를 결집시키고 있다. 반면,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의사 출신으로 상파울루 주지사를 역임한 아우키민 후보는 중산층과 엘리트들의 지지를 모으고 있다. 부유층들이 많은 상파울루에선 룰라는 무식하고 촌스러워 무조건 싫다는 반감이 감지된다. 룰라와 아우키민 후보의 공약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미지’ 선거 현상도 나타난다.

남미 국가들 대부분에서 빈부격차는 ‘역사적 현상’일 정도로 고질병이지만, 브라질은 특히 정도가 심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브라질을 세계에서 4번째로 불평등한 국가로 꼽는다. 상위 10%가 빈곤층 하위 10%보다 85배의 부를 가지고 있으며, 1%의 상류층 인구가 43%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좌파’라는 애초의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전임 우파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을 그대로 따랐지만, 사회정책면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빈곤층 가정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지원하는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을 계속 확대했다. 한달에 30~45달러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 가구는 2003년 360만가구에서 올해 1110만 가구로 늘었다. 지난 4년 동안 최저임금은 17% 인상됐다.

상파울루에서는 드문 룰라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호아오 다 페냐(65·전 언론인)는 “룰라의 4년은 우리들의 희망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상파울루는 좋은 곳이지만, 북동부는 가난과 절망의 땅이다. 그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 룰라다. 상파울루가 아닌 브라질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룰라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18일 찾아간 상파울루 중심부의 노동자당 중앙당사엔 ‘농촌 노동자는 룰라에 투표한다’는 전단지가 가득 쌓여 있다.

마를레니 다 호샤 노동자당 정치담당 국장은 룰라 대통령의 승리를 장담하면서 “상파울루에서는 70~80%가 아우키민을 지지하며 이곳 언론계도 노골적으로 아우키민을 지지한다. 상파울루 주민들은 대부분 중산층으로 언론에 민감하기 때문에 언론계가 만드는 반 룰라 여론의 영향을 받지만 전국적으로는 룰라 지지가 높기 때문에 그가 당선될 것”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노동자당의 부정부패 스캔들에 대해 묻자 호샤 국장은 “불행히도 부정부패 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항상 은폐해온 과거 정권들과 달리 노동자당은 모두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처벌했다. 노동자당 정권에서 부패가 늘어난 게 아니라 드러난 사건이 많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당은 최근 잇단 스캔들이 터지면서 정당 이미지가 크게 얼룩졌다. 지난해 의회 표결에서 유리한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정당 의원 2명에게 1만2천달러를 건냈다는 스캔들에 이어 지난달엔 정치적 라이벌들의 부정부패에 관한 문서를 80만달러를 주고 사들여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문서 스캔들’이 터졌다. 이는 이달 초 대선 1차투표에서 룰라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한 주요 원인이 됐다. 룰라 대통령은 자신은 이런 일들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깊이 뿌리내린 정치권의 부패를 개혁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선 결선 투표를 앞두고 정치 스캔들 논란이 계속되고, 부유층과 빈곤층의 표심이 뚜렷히 갈리면서 국론분열이 너무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 상파울루 중심에서 북부 빈곤층 거주지역으로 향하는 서민 열차를 탔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집으로 향하는 지친 모습의 노동자들 사이로 가방에 몰래 맥주와 땅콩 과자를 넣고다니며 파는 노점상들이 생업에 한창이다. 대부분 월 150달러의 최저 임금을 버는 이들이다. 빛나는 경제적 잠재력과 빈부격차라는 브라질의 두얼굴을 안고 기차는 숨가쁘게 달렸다.

글·사진=상파울루/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바뀐 것 없는 거시정책 ‘무늬만 좌파’ 보수파는 빈민지원·낮은 성장률 비판

노동자당 정권 경제정책 평가

브라질 GDP 중 공공부문 부채비율 (%)
브라질 GDP 중 공공부문 부채비율 (%)
1억8천만명이 넘는 인구와 세계 5위의 광활한 토지를 가진 브라질은 구매력지수(PPP)를 고려한 국민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며 남아메리카 경제를 주도한다. 대부분이 농업에 의존하는 다른 남미국가들과 달리 브라질 국민총생산의 38.6%가 자동차, 철강, 항공기 제조, 섬유 등 제조업에서 나오고, 금융 서비스도 주요 산업이다. 산업의 대부분이 상파울루에 밀집돼 있고, 국민총생산의 50~60%가 상파울루에서 나온다.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좌파·낙후된 북동부 농촌 출신 대통령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룰라 대통령의 4년은 지지자와 반대파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룰라 대통령은 우파정권인 엔리케 카르도수 전임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개방과 외국인투자 확대 정책을 적극 추진해 ‘무늬만 좌파’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중국 수요에 기댄 수출붐으로 무역흑자가 늘고 대외부채가 크게 감소하면서 호황을 맞았지만, 애초 약속했던 기아제로나 농지배분 정책은 크게 희생됐다. 상파울루대학 경제조사연구소(FIPE) 카를로스 안토니오 루키 소장은 “룰라 정부의 정책은 좌파 성향을 띤 적이 없다. 표면적으로만 좌파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보수파나 재계에선 국민총생산의 38%에 이르는 높은 세금부담과 낮은 경제성장률을 공격한다. 이들은 룰라 대통령이 빈곤층에 대한 퍼주기 정책으로 재정을 축내면서 성장률도 연평균 2~3%대에 머물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같은 브릭스 국가인 인도, 중국이 8~9%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비해 한참 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파 정권과 룰라 정부 경제정책의 유일한 차이는 빈민층에 대한 지원 확대와 미국보다는 신흥 개발도상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대외정책 정도다. 저속득층에 대한 사회보장 지출은 GDP의 12.6%(2002)에서 13.9%(2005)로 확대됐다. 룰라 대통령은 중국, 인도, 남아공 등과의 남남협력을 강조하고 남미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 강화를 추진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룰라 대통령이 재선돼더라도 1기 경제정책의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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