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1997년 자료사진. 2006년 12월 10일 심장병으로 칠레 산티아고 군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보도됐다. 향년 91세.(AP=연합뉴스)
칠레 산티아고 군병원측 “10일 일요일 사망” 공식 발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공포정치’로 칠레를 17년간 통치했던 독재자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에이피(AP)> 통신은 10일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레를 철권통치한 ‘반공주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일요일(현지시각)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피노체트는 산티아고 군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군병원 측 발표를 보면, 피노체트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악화됐고 의사들은 그를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한다. 피노체트는 1주일 전 심장발작에서 회복하던 중이었다. 피노체트의 가족과 친지들이 피노체트에게 병문안하러 가는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노체트는 1주일 전 급성 심장발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에이피(AP)통신〉은 “의사들은 심장으로 혈류를 원활하게 흐르게 하기 위한 혈관확장술을 했다”고 보도했다. 잠시 회복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으나, 그는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칠레 일간 〈라 테르세라>(www.latercera.cl) 인터넷판은 “가족들이 피노체트의 쾌유를 빌고 84번째 생일을 맞은 부인 루시아 히리아트를 축하하기 위해 미사를 드리러 가던 도중이었다”고 보도했다. 〈라 테르세라〉를 비롯한 칠레 언론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칠레 국민들의 찬·반 여론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에이피〉등을 인용해 칠레 여론을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10일 (현지시각) “피노체트의 반인권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칠레 국민들은 피노체트를 존경하고 있다”며 “이들은 피노체트가 공산주의에서 칠레를 구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피노체트 추종자들은 피노체트가 은행 비밀계좌에 2700만 달러를 은닉했고 이것이 드러나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 사건 때문에 피노체트는 91세로 죽을 때까지 조사와 거부를 반복하며 재판을 받았다.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그의 병세가 너무 악화돼 재판을 받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며 “사실상 재판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노체트 재임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3천여명이 사망했고, 1천명 가량은 생사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피노체트가 입원했던 군병원측은 “피노체트가 10일 일요일 2시 15분(현지시각)에 사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칠레 일간 〈라 테르세라>(www.latercera.cl) 인터넷판은 “가족들이 피노체트의 쾌유를 빌고 84번째 생일을 맞은 부인 루시아 히리아트를 축하하기 위해 미사를 드리러 가던 도중이었다”고 보도했다. 〈라 테르세라〉를 비롯한 칠레 언론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칠레 국민들의 찬·반 여론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에이피〉등을 인용해 칠레 여론을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10일 (현지시각) “피노체트의 반인권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많은 칠레 국민들은 피노체트를 존경하고 있다”며 “이들은 피노체트가 공산주의에서 칠레를 구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피노체트 추종자들은 피노체트가 은행 비밀계좌에 2700만 달러를 은닉했고 이것이 드러나자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 사건 때문에 피노체트는 91세로 죽을 때까지 조사와 거부를 반복하며 재판을 받았다.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그의 병세가 너무 악화돼 재판을 받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며 “사실상 재판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노체트 재임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3천여명이 사망했고, 1천명 가량은 생사확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피노체트가 입원했던 군병원측은 “피노체트가 10일 일요일 2시 15분(현지시각)에 사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