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1973년 유혈 쿠데타로 집권...17년간 철권통치
‘잔혹한 독재자’ 혹은 ‘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나눠진 평가
‘잔혹한 독재자’ 혹은 ‘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나눠진 평가
‘남미판 박정희’로 불리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91) 전 칠레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국군통합병원은 이날 오후 2시께 피노체트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피노체트는 지난 3일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긴급수술을 받은 뒤 10일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영욕의 독재자=피노체트는 1973년 미국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아옌데는 사회주의자로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피노체트는 1988년 임기 연장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1990년 대통령직을 이양할 때까지 17년간 철권을 휘둘렀다.
피노체트는 쿠데타 뒤 비밀경찰을 동원해 반체제 인사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그의 집권 동안 공식적으로 3000여명 이상이 살해당하고 3만명 이상이 비밀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종된 이들을 합치면 3만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 대통령인 미첼 바첼렛의 아버지도 피노체트 정권에 항거했던 대표적 정치인으로, 당시 고문으로 사망했다.
이날 산티아고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춤을 추며 피노체트의 사망을 환영했다. 조제 살리나스(50)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극심한 고통, 독재, 고문의 순환고리 종식을 축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군통합병원 인근에서는 피노체트 지지자 700여명이 국가를 부르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잔혹한 독재자’와 ‘경제를 살린 영웅’. 피노체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피노체트는 집권 기간 동안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개방과 민영화를 추구해 높은 물가를 진정시키고 고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경제적 성과는 아옌데 정부가 반대파의 반발을 물리치며 이뤄낸 구리산업 국영화와 이미 60년대 이뤄졌던 토지개혁에 힘입은 바 크다는 지적이 많다. 칠레의 구리는 전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어 현재도 칠레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 반응=국제 사회는 독재자에 대한 단죄가 무산됐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컸다. 스페인의 좌·우 정당들은 그가 각종 인권유린 사건으로 처벌되기 전 사망했다는 데 유감을 표명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의 사망이 인권유린 사건에 정의를 가져오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피노체트의 후원자였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매우 슬퍼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전직 육군 최고사령관으로만 인정해 군 시설에 조기를 게양하는 것은 인정키로 했다고 <에이피>(AP)가 보도했다.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 전직 육군 최고사령관으로만 인정해 군 시설에 조기를 게양하는 것은 인정키로 했다고 <에이피>(AP)가 보도했다.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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