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사진 AP 연합뉴스
“낙태여성 처벌” 발언에 와르르
공화당 경선 판도 바뀔 가능성
당 지도부, 조정자로 나설수도
샌더스도 힐러리 크게 눌렀지만
대의원수 격차 좁히기엔 역부족
공화당 경선 판도 바뀔 가능성
당 지도부, 조정자로 나설수도
샌더스도 힐러리 크게 눌렀지만
대의원수 격차 좁히기엔 역부족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의 선두주자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5일 위스콘신주에서 치러진 경선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게 대패하면서 공화당 경선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의 패배는 경선 직전 불거진 ‘낙태 여성 처벌’ 발언 등 스스로 화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화당 주류세력이 ‘반트럼프 전선’에 힘을 모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이날 위스콘신주 경선에서 크루즈에게 13%포인트 이상 크게 뒤졌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5~10%포인트 정도 뒤지는 것으로 예측된 터라,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위스콘신은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 사이 ‘오케이 목장의 결투’와 같은 곳이었다. 공화당 주류는 위스콘신을 ‘트럼프 돌풍’ 저지의 마지막 보루로 삼아, 슈퍼팩(정치활동위원회)을 통해 엄청난 광고 자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맞서 트럼프도 1주일 내내 위스콘신에서 살다시피 하며 주류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패배에는 주류들의 파상공세뿐 아니라, 그 자신의 막말 역풍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주 “낙태 여성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여성 유권자들의 광범위한 반발에 부딪쳤다. 미국에선 아무리 보수적인 정치인이라도 낙태 의사들은 몰라도 여성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진 않는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도 허용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는 등 그의 국가안보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확산됐다. 미국 언론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 유권자 10명 가운데 4~5명꼴로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에 우려를 내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전문가들이 크루즈와 5~10%포인트 이상 격차가 벌어지면 막말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예측했던 점에 견줘보면, 이번 경선 결과는 역풍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의 이번 패배를 첫 경선이 열렸던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크루즈에게 패배한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이날 트럼프의 패배로 오는 7월 ‘중재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재 전당대회는 경선에서 어느 누구도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대선 후보 지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 당 지도부가 사실상 조정자 구실을 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다. 공화당 지도부가 경선 1위인 트럼프를 배제하려 할 경우, 공화당은 트럼프 대 반트럼프 진영으로 나뉘어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중대한 경선 길목에서 쓴잔을 마신 트럼프는 이날 밤 기자회견 없이 공화당 주류를 겨냥한 불만 섞인 성명을 냈다. 그는 성명에서 “크루즈 뒤에는 위스콘신 주지사, 보수적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 모든 공화당 기구들이 있었다. 크루즈는 나의 후보 지명을 훔치려는 공화당 보스들이 사용한 트로이 목마”라고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반면, 크루즈는 자신이 공화당의 반트럼프 진영의 대표 주자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크루즈는 이날 “오늘 저녁은 전환점”이라며 “힐러리여, 준비하고 있어라, 우리가 여기 있다”고 다소 허풍 섞인 승리의 변을 내놨다.
민주당 경선에선 99% 개표가 진행된 상황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56.5% 대 43.2%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크게 눌렀다. 샌더스는 최근 7개 주 경선 가운데 6곳을 이기는 기염을 토했지만, 대의원이 많은 지난 3월 남부주 경선에서 큰 격차로 패한 탓에 대의원 수에서 클린턴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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