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치러진 미국 뉴욕주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60.5%를 득표하며 압승을 거둔 도널드 트럼프가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외교안보정책 첫 공식 발표
협상 결렬땐 ‘미군 철수’ 시사
협상 결렬땐 ‘미군 철수’ 시사
미국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27일(현지시각) 대외정책의 윤곽을 발표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유럽 및 아시아에 추가적인 방위비용 지불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논란이 됐던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 등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제된 외교안보 정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서,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한 외교정책 연설을 통해 “내가 최근 많이 얘기했듯이, 우리의 동맹국들은 공평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며 ”동맹국들은 미국의 거대한 안보 부담에 대해 재정적·정치적·인적 비용에 더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맹국들이 미국을 허약하고 관대한 국가로 인식하면서 협정을 존중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며 “예를 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경우 28개국 가운데 미국을 제외한 4개국만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방어해주는 나라들이 방위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은 각 나라들이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나토 이외에 그동안 안보 무임승차론의 사례로 들었던 한국이나 일본,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구체적인 국가의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 동맹국들’이라고 지칭한 점에 견줘볼 때 한국도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이번에도 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군 철수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그동안 막말 수준으로 취급했던 발언들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미군 철수가 방위비 부담을 동맹국에 더 안기기 위한 협상카드용인지, 아니면 실제로 가능한 정책적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어찌됐든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가 이날 한국 및 일본의 핵무장 허용 발언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이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국 방위 원칙’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핵무장 허용’도 가능한 것이어서, 이런 논란이 완전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고 핵 능력을 확장하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맥없이 쳐다만 보고 있다”며 “우리는 중국이 통제 불능의 북한을 제어하도록 중국에 우리의 경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대북 접근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을 미국의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놓고, 중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했을 때 미국이 입을 수 있는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럴 것 같지는 않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 정교한 접근법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굴욕적’이었다며, 그 중 하나의 리스트로 언급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이 전반적으로 혼합돼 있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와 ‘강한 미국’으로 표현됐다.
고립주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지친 미국인의 밑바닥 정서를 건드리는 것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정책도 크게 보면 ‘제한적인 개입주의’로 고립주의에 가깝다. 트럼프가 오바마의 대외정책을 비판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엇비슷한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대안이 없을 때는 군사력 배치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일 때만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쟁터에 최정예 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그렇게 할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리비아 공습에 대한 비판에서도 고립주의가 읽혀진다.
중국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중국과의 대외무역 적자는 강하게 비판했지만, 중국 내 우호적인 친구들을 찾아 남중국해 문제 등도 더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와도 관계 개선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강한 미국’을 내걸으면서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서로 상호 모순되는 지점은 여전한 셈이다.
이런 모순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대책이다. 그는 “이들은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IS는 아주 신속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어떻게’에 대해선 ‘군사력뿐 아니라 철학적 수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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