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3일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르고 있는 버니 샌더스 후보가 뉴욕주에서 열린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패했지만, ‘생활임금’ 개념 반영 등 자신의 핵심구상 상당부분을 당 정강정책에 반영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득불평등 해소와 월가 개혁에 대한 민주당 유권자들의 변화 열망을 등에 업은 ‘샌더스의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강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1일(현지시각) 발표한 당 정강정책 초안을 보면, ‘소득인상과 중산층을 위한 경제적 보장 회복’이라는 항목에서 “현행 최저임금은 사실상 ‘기아 임금’ 수준으로, ‘생활임금’(living wage) 수준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명시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의 주거비와 교육비, 문화비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임금을 보장하자는 진보적인 제도로, 국내 일부 지자체들도 이를 시행하고 있다.
초안은 이를 위해 “미국인들은 시간당 최소한 15달러의 임금을 받아야 하며,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를 갖는다”고 적시했다. 이는 샌더스가 경선 유세 과정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내용이다. 미국 연방의 현재 최저임금은 7.25달러다. 클린턴도 유세 과정에서 최저임금을 12달러까지 인상하는 것까지는 찬성한 바 있다. ‘생활임금’이라는 개념 자체와, 이를 위해 현행 최저임금보다 2배 이상의 임금 인상을 당 정강정책에 반영한 것 자체가 기업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는 미국에서 이례적인 셈이다.
초안은 또한 “지난 40년간 중산층 쇠퇴의 주요 이유는 더 나은 임금과 혜택을 위한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이 모든 수준에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초안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강할 때 미국이 강하다”며 “민주당은 노동자들이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노조를 조직하고 가입하는 것을 더 쉽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역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샌더스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월가 개혁과 관련해서도 샌더스의 입장이 상당 부분 아로새겨졌다. 초안은 “일반인을 보호하고 금융안정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을 때, 금융기관 규모를 줄이거나 분리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제기관에 부여하거나 당국의 기존 규모를 지금보다 더 확대하고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초안은 “월가와 연방 정부간의 ‘회전문 인사’를 엄중하게 단속할 것”이라고 밝힌 뒤 금융기관 중역들의 지역 연방준비은행 이사 겸직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월가 인사들이 금융당국의 주요 정책담당자로 왔다가 다시 월가로 돌아가는 관행이 쌓이면서, 금융정책이 대형 금융사 등 월가에 유리한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불만과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 사형제 폐지,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법 집행 시정도 담았다.
이번 초안은 정강정책위원회 논의 과정을 거쳐 오는 25~28일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추인될 예정이다. 정강정책이 대선 후보들에게 실행을 요구하는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당 후보와의 본선 경쟁에서 ‘공약처럼’ 지키는 게 불문율로 굳어져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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