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왼쪽)과 지지를 선언한 샌더스(오른쪽) 상원의원. 포츠머스/UPI 연합뉴스
1. 지난해 5월 벌링턴 출정식…무명의 아웃사이더 출마 자체가 드라마
2. 3월8일 미시간주 경선…‘두자리 패배’ 예상 뒤엎고 클린턴 눌러
3. 2월9일 뉴햄프셔서 경선 첫 승리…‘클린턴 대세론’ 눌러
4. 지난해 8월 포틀랜드 구름관중…클린턴 쪽 긴장하게 만들어
5. 지난 3월 포틀랜드 유세장 찾은 새…‘버디 샌더스’ 유행
6.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등 대표 공약 민주당 강령 반영
2. 3월8일 미시간주 경선…‘두자리 패배’ 예상 뒤엎고 클린턴 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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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난해 8월 포틀랜드 구름관중…클린턴 쪽 긴장하게 만들어
5. 지난 3월 포틀랜드 유세장 찾은 새…‘버디 샌더스’ 유행
6.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등 대표 공약 민주당 강령 반영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후보 자리를 놓고 ‘정계 거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6개월여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75) 상원의원이, 12일(현지시각) 경선을 접고 공식적으로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해 4월 정치혁명과 소득불평등 해소, 월가 개혁을 전면에 내걸고 민주당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한 지 꼭 441일 만이다.
샌더스는 이날 오전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클린턴 전 장관과 처음으로 공동유세에 나선 자리에서 “클린턴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으며, 승리를 축하한다”며 “내가 왜 클린턴을 지지하는지, 그리고 왜 클린턴이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샌더스는 “11월 대선으로 향하면서 클린턴이 단연코 그것(대통령직)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후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클린턴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441일 동안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을 연출했다. 우선, 출마 자체부터가 드라마였다. 민주당 안에서도 진보적인 ‘무브온’ 등 풀뿌리 단체들은 클린턴의 경쟁자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출마를 원했다. 월가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화력’이 좋은 워런 의원이 클린턴의 보수적인 정책을 진보 쪽으로 견인하는 역할에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런의 저울질이 길어지면서 샌더스가 민주당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그는 인지도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출마를 주목하지 않았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에게 주류 언론들은 ‘괴짜’ ‘이단아’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유세를 거듭할수록 클린턴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가 시장으로 재직했던 정치적 고향 버몬트주 벌링턴이 주목받았고, 벌링턴 ‘섐플레인 호수’에서 지지자 수천명이 모인 가운데 치른 지난해 5월 출정식은 명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
클린턴과의 경선 과정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명승부였다. <시엔엔>(CNN)은 지난 3월8일 미시간주 경선을 기억해야 할 샌더스의 명장면 맨 앞에 놓았다. 투표 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샌더스의 두 자릿수 격차 이상의 패배를 예고했다. 하지만 샌더스는 투표 결과 2%포인트가량 클린턴을 앞질렀다.
샌더스는 미시간주 경선보다 한 주 앞서 치러진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남부 여러 주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클린턴 몰표’로 대패했기에 미시간 승리는 더욱 값진 것이었다. 클린턴 진영이 조기에 경선을 마무리짓겠다며 파죽지세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미시간 승리는 샌더스에게 숨통을 열어주고 추격 발판을 마련했다. 또 자동차산업 등이 밀집된 이 지역에서의 승리는 샌더스가 노동자 계층에 상당한 소구력이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또 하나의 명장면은 이보다 앞선 2월9일 뉴햄프셔주 승리다. 8일 전 첫 민주당 경선이 치러진 아이오와주에서 클린턴에게 ‘0.35%포인트’로 아슬아슬하게 패한 샌더스는 뉴햄프셔에서 22%포인트의 압도적 차이로 클린턴을 눌렀다. 이 큰 표 차의 첫 승리로 샌더스는 ‘클린턴 대세론’을 제압했다. 인지도 열세와 자금력 부족을 열성적인 풀뿌리 조직의 지원과 기성 질서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으로 뒤집으면서, 그는 민주당 경선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발판을 마련했다.
또다른 샌더스의 명장면으로는 ‘구름관중’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8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유세에는 1만9천명 이상의 관중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야구경기장을 꽉 채웠다. 경기장 직원들은 9천명의 관중이 더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해 여름에만 총 10만명 이상이 그의 유세에 참석했다고 집계하기도 했다. 구름관중은 클린턴 쪽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샌더스가 지난 3월 포틀랜드 유세장을 다시 찾아 연설하는 도중,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든 장면도 화젯거리로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단을 배회하던 새가 연설하던 샌더스 앞에 사뿐히 내려앉자, 샌더스는 “우리에게 평화를 부탁하러 온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지지자들은 뜻하지 않은 방문객 새(Bird)와 버니(Bernie) 샌더스 의원을 합친 ‘버디 샌더스’(Birdie Sanders)라는 로고를 재빠르게 만들어 돌렸다.
이렇게 눈에 확연히 보이는 장면보다 ‘보이지 않은’ 명승부·명장면은 민주당 안팎의 압력에도 경선 포기를 끝까지 미루며 자신의 대표 공약인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등의 공약을 반영시켜 역사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 강령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시엔엔>은 이날 “정치혁명과 그의 역사적인 유세들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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