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응답하고 있다. 필라델피아/EPA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지지 연설 뒤 전당대회 참석자들에게 키스를 보내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전대) 첫날인 25일(현지시각) 찬조연사로 나와 클린턴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표시하며 아낌없는 지원사격을 했다. 다른 찬조연사들이 클린턴 지지 선언을 할 때마다 “버니! 버니!”를 외치며 불만을 표시하던 샌더스 지지자들의 목소리들도 두 사람의 연설 앞에선 잦아들었다.
민주당 전대가 열린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농구경기장인 ‘웰스파고 센터’에서 샌더스는 마치 ‘마지막 유세’를 하듯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절제된 행동과 정제된 언어로 자신이 왜 ‘정치혁명’을 경선 과정에서 주장했는지, 왜 소득불평등 해소가 중요한지, 그리고 왜 트럼프가 아니라 클린턴을 찍어야 하는지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명연설’이었다.
2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샌더스 지지자가 눈물을 흘리며 버니 샌더스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밤 10시48분, 이날의 마지막 연사로 샌더스가 나타나 50개 주에서 모인 대의원과 방청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연단 앞에 서자, 기립박수와 함성이 3분가량 이어졌다. 샌더스는 먼저 자신의 선거운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수십만명의 미국인과 자신에게 소액기부를 한 250만명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드러난 그에게 불리하게 진행된 민주당 경선과 클린턴의 승리에 실망한 지지자들을 달랬다. 그는 “나보다 더 실망한 사람이 있겠느냐”며 “우리가 성취한 역사적 성과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는 미국이 안고 있는 소득불평등, 경제, 인종갈등 문제 등을 차례대로 짚은 뒤 “객관적인 관찰자라면 클린턴의 사고와 지도력에 근거해, 클린턴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지지 선언을 했다. 전당대회 참석자들 사이에선 다시 휘파람과 함성,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클린턴과 내가 수많은 이슈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경선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다”라며 “클린턴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고, 나는 오늘 밤 그녀의 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는 30분간의 연설 도중 ‘힐러리’를 15번 언급했다.
지난주 열린 공화당 전대에서 남편 도널드 트럼프 찬조연설에 나섰던 멜라니아의 연설문 표절 의혹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샌더스에 앞서 지지 연설을 통해 클린턴에 힘을 실어줬다. 미셸은 “11월에 투표소에 가서 결정하는 것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혹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아니라, 앞으로 4년이나 8년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누가 만들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친구 힐러리 클린턴만이 유일하게 그런 책임을 맡길, 진정으로 미국 대통령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클린턴 때문에 내 딸들, 우리 모두의 아들과 딸들이 이제 여성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당대회장은 전반적으로 환호가 넘쳤지만, 샌더스 지지층들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쉽게 풀리진 않을 것으로 보여, 클린턴의 앞길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회장에 참석한 샌더스 지지자인 캘리포니아 대의원 마샤 퀼은 <한겨레> 기자와 만나 “샌더스가 건강보험을 개혁하겠고 해서 지지해왔다”며 “우리는 대통령 후보로 샌더스를 지지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지, 클린턴을 지지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퀼은 ‘그러면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을 것이냐’고 재차 묻자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다”며 답변을 피했다.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온 크리스털 스나이더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럼에도 클린턴은 대기업의 이익만을 보호해왔다”며 “클린턴의 거짓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선에서도 “녹색당 후보인 질 스타인을 찍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샌더스 지지층이 입은 상처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2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미셸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FP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필라델피아/AFP 연합뉴스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인 이날 36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 속에서 400여명의 샌더스 지지자가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대회장인 웰스파고 센터까지 6㎞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인 것도 클린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부 시위대가 전당대회장 주변 울타리를 흔들며 넘어가려 하자, 경찰이 50여명을 연행하기도 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필라델피아/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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