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여성의 권리를 말했던 참정권자들, 특히 정치 역사에서 모든 종류의 벽을 향해 돌진했던 여성들이 생각날 것 같네요.”
민주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미국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어 “여성이 어떤 꿈을 꾸든, 미국에서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며 포부를 밝힌 클린턴은 이틀 뒤인 26일, 미국 최초로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뒤 228년 만의 일이다.
민주당 188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클린턴이 전당대회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상 메시지를 전달할 때 역대 남성 대통령의 얼굴 사진이 슬라이드 형태로 이어지다, 스크린이 깨지는 듯한 영상 다음에 등장했다. ‘유리 천장’을 깨뜨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날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면서 지난했던 미국 여성들의 참정권 역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신들이 26일 전했다.
정치무대에 여성이 처음으로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게 1894년이다. 초대 대통령 취임 이후 100년이 지난 뒤였다.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은 1916년, 최초 여성 상원의원은 1932년에 등장했다. 미국 전역에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도 1차대전 이후인 1920년이나 되어서였다. 오늘날에도 미 연방 의회 의원 중 여성 의원 비율은 각각 하원 19%(84명), 상원 20%(20명)에 불과하다.
‘유리 천장’의 마지막으로 여겨지는 대선의 벽은 훨씬 높았다. 1872년 빅토리아 우드헐이 소수정당인 여성평등당 소속으로 첫 여성 대선후보로 지명받았으나, 본선에서 한 표도 못 얻었다.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첫 대선 경선에 나선 여성 후보는 첫 흑인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197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한 셜리 치점이었다. 주요 정당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시기도 민주당(제럴딘 페라로)이 1984년, 공화당(세라 페일린)은 2008년이 되어서였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 전광판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의 영상이 나오자, 지지자들이 ‘역사’라는 단어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FP 연합뉴스
하지만 클린턴이 이날 획득한 ‘여성 최초 주요 정당 대선 후보’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에 비해, 클린턴이 ‘여성 후보’로서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뉴욕 타임스>와 <엔비시>(NBC) 방송이 공동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남성 유권자들의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47%로, 클린턴의 36%를 11%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다. 그러나 여성 유권자 지지율은 클린턴이 41%, 트럼프가 34%로 7%포인트 차이에 그쳐 클린턴이 ‘여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영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너무 오랜 기간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힐러리의 이력이 ‘기득권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분석하며 “힐러리가 깬 ‘유리 천장’이 여성 유권자들에게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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