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미국 뉴저지주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크리스 크리스티 주지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트렌턴/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경우,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마저 트럼프의 무슬림 비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공화당 주류와의 분열은 물론, 캠프 내부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2일(현지시각) 뉴저지주 의회 의사당에서 기자회견 도중 트럼프의 무슬림 비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슬림계 미국인 변호사) 키즈르 칸의 연설을 아직 못봤다”면서도 “나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이어 “키즈르 칸 부부 입장에서 보면 아들이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고통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면서 “그들이 옳든 그르든,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는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 뒤 공화당 주류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가장 먼저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부통령 후보로까지 자주 거론됐다. 특히 그는 트럼프 집권 시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등 캠프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크리스티는 “우리는 국가를 위한 그들 부부의 희생, 그 아들의 희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 이외 다른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가 공적이든 사적이든 말을 할 때는 그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키즈르 칸 부부와 ’골드 스타 패밀리스‘(미군 전사자 가족모임)는 그들 자식의 희생에 관한 한 무엇이든 말할 권리가 있다”며 ”그들은 내가 부모로서 가늠할 수도 없는 그런 희생을 감수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크리스티는 전날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두고 “악마”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클린턴은 악마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의 발언이 논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물타기용’이라는 풀이도 있지만, 트럼프가 공개적인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점과 크리스티의 측근이 이날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점에 비춰보면 소신 발언에 가까워 보인다.
크리스티 주지사의 오랜 측근이었던 마리아 코멜라는 이날 <시엔엔>(C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공화당원들은 이제 침묵이 더 이상 선택이 될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며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코멜라는 “트럼프는 지금까지 선동꾼이었며, 엉성한 정보와 외설스런 말로 사람들의 분노를 사냥해왔으며,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미국 공화당의 3선 하원의원인 리처드 한나도 이날 ‘시러큐스닷컴’ 기명 칼럼에서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신 민주당의 클린턴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 연방의원으로서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한나 의원은 칼럼에서 “나로서는 트럼프 발언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많은 이슈에서 클린턴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클린턴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날에는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트럼프의 무슬림 비하 발언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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