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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트럼프-공화당 주류 ‘치킨게임’…루비콘강 건넜다

등록 2016-08-03 17:38수정 2016-08-03 21:49

트럼프, ‘무슬림 비하 발언’ 비판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 “지지 결정 안했다” 반격
대선 후보가 현직 의원 경선 때 지지선언 거부 이례적…‘콩가루 집안’ 양상
주류 쪽 부통령 후보 지명 등 양쪽 갈등 봉합 시도 2주도 안돼 ‘파탄’
공화 3선 하원의원, 크리스티 주지사 측근 등 잇단 ‘클린턴 지지’ 선언
트럼프 “내가 싫어도 나에게 충성해라”…주류와 ‘루비콘강 건넜다’ 분석도
2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군사작전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미국 군인에게 주어지는 퍼플하트 훈장을 손에 쥔 채 바라보고 있다. 애슈번/로이터 연합뉴스
2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군사작전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미국 군인에게 주어지는 퍼플하트 훈장을 손에 쥔 채 바라보고 있다. 애슈번/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지난 7월18~21일(현지시각)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선 후보와 당 주류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단합된 모양새를 연출하려 애썼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의 ‘무슬림 참전군인 부모 비하’ 발언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면서 양쪽의 갈등은 다시 ‘치킨게임’ 양상으로 격화하고 있다. 오는 11월8일 대선이 불과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은 ‘마지못한 통합이냐,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이냐’의 중대 기로에 섰다.

트럼프는 2일 <워싱턴 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당내 의원 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해 “아직 지지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내가 라이언을 좋아하지만, 지금 미국이 끔찍한 시대에 처해 있고 우리는 아주, 아주, 아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는 매케인에 대해서도 “그는 참전군인들을 위해 잘한 일이 없다”며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라이언은 지역구인 위스콘신주에서 오는 9일, 매케인은 이달 말 애리조나에서 공화당 내부 경선을 치러야 한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11월8일 대선과 동시에 치러지는 연방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의원 후보들과 본선을 치를 수 있다.

대선 후보가 인기 없을 경우 현직 의원이 선거 지원을 마다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선 후보가 현직 의원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하지 않는 경우는 미국 정치에서 아주 드물다. 게다가 라이언 하원의장은 공화당 서열 1위이고, 매케인 의원은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당내 거물이다. 트럼프 이후, 공화당이 ‘콩가루 집안’이 됐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라이언에게 도전한 폴 넬런 하원의원 후보에 대해 “라이언의 경쟁자는 내가 말하는 것을 열렬히 지지한다. 그는 선거운동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추어올리기도 했다. 트럼프에게 대관식을 열어주는 행사였던 전당대회를 주도하고, 미지근했지만 지지 연설까지 한 라이언에겐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존심 상한 라이언도 이날 대변인을 통해 “누구도 그의 지지를 요청한 적이 없다. 트럼프의 지지가 없어도 우리는 경선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며 각을 세웠다.

멕시코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등 잇단 막말로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는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냈다. 살얼음을 걷던 양쪽 관계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극적으로 봉합됐다. 주류가 정강정책에서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설치와 보호무역 등을 반영하는 데 동의하고, 트럼프는 주류 입장을 대변하는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는 전대에서 정제된 언어로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며, 짐짓 ‘대통령다움’을 부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밀월은 2주를 채 넘기지 못했다. 지난주 민주당 전대에서 2004년 이라크에서 숨진 참전군인의 부모가 트럼프를 비판하자, 트럼프가 이를 맞받아 무슬림 비하 발언을 했는데, 그 대상이 참전군인 가족이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차원으로 사태가 번진 것이다. 이에 라이언과 매케인마저 트럼프를 비판하자 트럼프가 일종의 ‘앙갚음’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화당 인사들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리처드 해나 공화당 3선 하원의원은 이날 <시러큐스닷컴> 칼럼에서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며 “많은 이슈에서 클린턴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클린턴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 연방의원으로 클린턴 지지를 선언한 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오랜 측근 마리아 코멜라도 이날 <시엔엔>(CN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공화당원들은 이제 침묵이 더 이상 선택이 될 수 없는 순간에 직면해 있다”며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경우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된 크리스티 주지사마저 이날 뉴저지주 의회 의사당에서 기자회견 도중 트럼프의 무슬림 비하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키즈르 칸 부부 입장에서 보면 아들이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고통은 가히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들(공화당 지도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트럼프의 발언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비판하면서 왜 여전히 그를 지지하느냐”며 불난 공화당에 기름을 끼얹었다.

공화당이 분열을 극복하고 다시 통합의 길로 가려면 ‘무슬림 비하’에 대한 트럼프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도 사과를 거부한 채 당내 ‘반트럼프’ 인사들을 겨냥해 “나를 싫어하더라도 나에게 투표하고 충성해야 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윽박지르는 방식을 택했다. 대선 당일까지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한 이유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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