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그린베이/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판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자 미국정신의학회(APA)가 ‘개인에 대한 정신감정은 비윤리적’이라며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고 <워싱턴 포스트> 등이 7일(현지시각) 전했다.
미국 대선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현재, 트럼프 후보의 정신 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 일주일 새 무슬림 가정에 대한 비하 발언과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의 갈등이 증폭되면서다. <엠에스엔비시>(MSNBC) 방송의 조 스카버러 앵커는 최근 방송에서 “트럼프는 과연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인가?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며 트럼프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프리 플리어 미국 하버드 의대 전 학장 역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트럼프는 자기애 인격장애다. 그는 단순히 자기애 인격장애일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를 정의내리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노스웨스턴대학의 교수진들은 최근 트럼프의 자기애적 성향을 다루는 심리학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정신감정 의뢰를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 캠페인도 시작됐다. 지난 3일 캘리포니아의 한 민주당원은 트럼프가 자기애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2만7000여명이 동참했다.
이처럼 대선 후보에 대한 정신감정 논란이 과열 양상을 띠자, 미국정신의학회는 지난 3일 성명을 내 ‘개인에 대한 정신감정은 비윤리적’이라며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마리아 오퀜도 미국정신의학회 회장은 ‘골드워터 규정’을 거론하며 “올해 대선은 매우 특이한 상황이고, 따라서 몇몇 사람들은 후보자들에 대해 정신 상태를 분석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는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골드워터 규정이란 ‘전문가들이 정신의학적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개인에 대해 정신의학적 진단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명시한 규정이다. 이 규정은 1964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의 이름에서 따왔다. 당시 미국의 한 잡지사에서는 1만2000여명의 정신과 의사들에게 골드워터 후보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한 바 있는데, 약 2400여개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골드워터의 정신 상태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이 조사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었고, 개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금지한 골드워터 규정이 만들어졌다. 미국정신의학협회는 1973년부터 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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