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에버렛/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난 31일(현지시각) 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발표한 강경한 이민정책이 보수적인 히스패닉 지도자들의 지지 철회 등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가 공약 발표 불과 몇시간 전에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이민정책 완화를 시사했던 탓에 트럼프에 대한 이들의 배신감은 더 커 보인다.
텍사스주 휴스턴 변호사 출신으로 ‘트럼프 히스패닉 자문위원회’ 위원이었던 제이콥 몬티는 이날 <시엔엔>(CNN)에 위원회를 탈퇴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공화당에 몸담았던 몬티는 “트럼프가 ‘청소년추방유예 프로그램’ 수혜자들(불법체류 청소년들)까지 추방하겠다는 건 정말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잔인하다. 트럼프의 이미지 만들기 도구로 사용되고 싶지 않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몬티는 <뉴욕 타임스>에도 “트럼프는 히스패닉 자문위원회 모임에서 ‘불법이민 합법화 등 새 정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젠) 희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자문위원회 소속 라미로 페나 목사도 지지 유세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보수적 원칙을 위한 라티노 파트너십’의 알폰소 아귈라 회장도 이날 <시엔엔>에 나와 “지난 두달동안 트럼프는 범죄 기록이 없는 히스패닉은 추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제 발표한 이민정책은) 초기 경선과정에서 제안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고 평가하면서 공식적으로 지지를 철회했다.
최근 강경한 이민정책을 완화할 수 있음을 내비치며 멕시코 대통령까지 만났던 그가 몇시간 뒤 갑작스레 다시 강경으로 돌아선 배경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캠프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결국에는 그가 전적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캠프 내부 강경파들은 정치공학적으로 판단할 때 엄격한 이민정책이 오히려 트럼프의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 부동층 표를 더 끌어올 수 있다고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오전 트럼프 캠프 회의에선 “트럼프 (강경 이민정책) 연설을 칭찬하며,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충만하고 낙관적인 분위기였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캠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로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 추방 및 거대한 장벽 건설을 핵심으로 한 초강경 반이민정책을 발표한 8월31일 온라인 소액기부로만 500만달러(약 56억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하루 모금액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쪽은 이날 트위터에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대해 “수백만 명 이민자를 향해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은 8월 한 달간 230만명으로부터 1억4300만 달러(약 1605억 원)을 모금해 대선 레이스 돌입 이후 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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