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치러진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왼쪽)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공화당 대선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AFP 연합뉴스
“서로를 존중하는,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할 수 있을까요?”
무대 한켠에 앉아 있던 청중의 마지막 질문이 나오자, 관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음담패설’ 녹취록 공개, 이메일 스캔들, 세금 회피 의혹… 90분 내내 이어진 날선 공방이 끝나려던 참이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의 자녀들을 매우 존경한다. 매우 능력있고 헌신적”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대신 그의 자녀들을 칭찬했다. 트럼프 역시 클린턴의 칭찬에 감사를 표하며 “힐러리는 절대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이날 토론에서 유일한 ‘훈훈한’ 대화였다.
9일(현지시각) 밤 9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열런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두 후보는 무대에 오른 뒤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면서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후보자가 1대 1로 맞선 1차 토론과 달리, 이번 토론은 두 후보가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청중과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이어서 후보자들이 서로의 답변에 쉽게 끼어들진 못했다. 그러나 두 후보의 발언은 지난번보다 훨씬 수위가 높았고, 날이 서 있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두 후보의 가족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클린턴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트럼프 후보의 부인 멜라니아는 서로 악수를 나눈 뒤 가족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가 지난 26일 1차 토론이 끝난 뒤 빌 클린턴의 성 추문을 폭로할 것이라 예고했고 이날 성추문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으나, 빌 클린턴이나 멜라니아의 모습은 화면에 자주 드러나지 않았다.
1차 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두 후보의 토론 태도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청중의 질문에 눈을 맞추며 답변한 뒤 차분히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발언 차례를 기다렸던 클린턴과는 달리, 트럼프는 마이크를 쥐고 무대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민주당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거론하며 “샌더스가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비난했고, 클린턴의 실언을 지적하는 사회자의 말에 “클린턴의 마음속에는 엄청난 증오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공세에 지난 1차 토론에서처럼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라”라고 받아쳤다.
9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치러진 2차 텔레비전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시엔엔> 방송의 앤더슨 쿠퍼(왼쪽) 앵커와 <에이비시> 방송의 마사 래더츠 기자가 청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AFP 연합뉴스
이번 토론의 사회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으로 토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엔엔>(CNN) 방송의 앤더슨 쿠퍼 앵커는 토론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취록을 언급하며 “그것이 대통령의 자질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고, <에이비시>(ABC) 방송의 마사 래더츠 기자 역시 클린턴을 향해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의하면 당신은 특정 사안에 대해 공적이고 사적인, 두 가지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2분의 발언 시간을 고수하는 사회자를 향해 트럼프는 “사회자들은 내 답변 시간이 1초라도 길어지면 마치 큰 일처럼 굴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에 더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흔치 않게 어둡고 쓰라린 대결’(워싱턴 포스트), ‘트럼프-클린턴, 가시돋친 말을 주고받다’(월스트리트 저널), ‘더러운 싸움’(시엔엔) 등의 제목이 달린 머릿기사를 내보내며 혹평했다. <뉴욕 타임스>는 사설에서 “무대 위에 있는 사람 중 클린턴만 어른인 것 같았다. 트럼프는 프로 레슬링과 리얼리티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이용했던 속임수에 다시 기댔다”고 분석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도 “트럼프는 이번 토론을 통해 그간의 논란을 재설정하길 바랐겠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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