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에서 열린 제2차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공화당 대선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오른쪽) 민주당 대선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AFP 연합뉴스
“그간 내게 묶여 있던 족쇄가 풀어져 좋습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거죠.”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을 비롯해 사실상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을 비판하며 이런 글을 올렸다. 그간 아슬아슬한 공생을 유지했던 공화당을 ‘족쇄’로 표현하며, 당의 방침을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원하는 대로 남은 선거를 이끌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이어 성 추문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유색인종·여성 등 유권자들의 폭을 넓히는 전통적 선거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포함해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원래의 트럼프’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잇따른 추문으로 벼랑 끝으로 몰린데다 공화당마저 고개를 돌리자,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며 대선 후보까지 오른 자신의 옛 전략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1일 보도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9일 있었던 2차 텔레비전 토론 이후 클린턴 후보,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주류 정치인을 겨냥한 공세를 이어갔다. 트럼프는 10일 공개한 텔레비전 선거 광고에서 클린턴의 ‘건강 이상설’을 노골화한 ‘네거티브 전략’을 꺼내들었다. 광고에는 “힐러리 클린턴은 세계를 이끌 용기와 힘, 체력이 없다”는 문구와 함께 지난 9·11 테러 추모 행사 당시 폐렴으로 인해 부축을 받은 클린턴의 모습이 등장한다. 또 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내가 이긴다면, 라이언은 그 자리(하원의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자신을 비판한 라이언을 공격하는 등 기득권 정치인 혐오 정서를 부추겼다.
한편, 2차 토론 이후 클린턴과 트럼프 사이의 지지율 격차는 다시 조금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엔비시>(NBC) 방송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클린턴의 지지율은 46%로 트럼프(37%)를 9%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그러나 11%포인트 차이가 났던 10일 조사보다는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고 다시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트럼프가 위기로 몰리면서 지지층이 결집하는 듯한 모양새다.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고 응답한 공화당원 응답자들의 비율(83%)이 지난 조사(60%)에 비해 크게 올랐다.
그러나 지금 선거를 치른다면 클린턴이 34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트럼프(197명)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분석도 나왔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간의 여론조사를 집계한 결과,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이 점점 줄고 있으며,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펜실베이니아 등에서도 모두 클린턴이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고 11일 전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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