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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온갖 추문에도 트럼프 콘크리트 지지율 왜?

등록 2016-10-13 22:29수정 2016-10-13 22:38

조성대 교수의 미국 대선 깊이보기
(13) 양극화 시대, 미국 유권자의 선택

성폭행 스캔들 추문 등에도 42% 이하로 내려간 적 없어
정치·사회문화·지지층 양극화에 원인…웬만한 외부적 충격에도 굳건

12일 미국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함께,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푸에블로/AFP 연합뉴스
12일 미국 콜로라도주 푸에블로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함께,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푸에블로/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한때 0.9%포인트 차이로 박빙을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간의 지지율 격차는 지난달 26일 1차 텔레비전 토론을 기점으로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지난 8일 <워싱턴 포스트>가 공개한 트럼프의 11년 전 여성비하 음담패설 비디오는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정치 전문 매체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 여론조사 평균치를 보면, 2차 토론이 사흘 지난 12일 현재 클린턴 후보는 6.2%포인트 차이의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9월 이후 양자 대결 때 트럼프 지지율은 좀처럼 42% 아래로 내려가진 않는다. 왜 그럴까?

미국 정치의 양극화에 이유가 있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정치는 공화·민주 양당이 서서히 극과 극의 길을 걷기 시작해 2013년까지도 그 추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의정 활동에서 정당 리더십의 강화나 선거구 개혁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동질적인 지역구 수가 증가한 것 등이 제도적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보다 소득 불평등 확대에 따른 경제적 양극화, 남부지역 보수 백인들의 정당 지지 변경 같은 사회경제적 쟁점들이 근본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 양극화를 불렀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과 1960년대 린든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프로젝트는 민주당 행정부가 주도한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에 기초한 복지국가 프로그램이었다. 시장에서의 경쟁보다는 사회적 평등에 중점을 둔 미국식 사회민주주의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민영화, 감세, 군비 확대, 사회복지기금 감소를 뼈대로 하는 ‘레이거노믹스’로 기존 복지국가 모델의 해체를 시도했다.

1992년 빌 클린턴 후보가 ‘새로운 민주당’을 슬로건으로 정권을 되찾았지만, 새로움이란 신자유주의를 일정하게 수용한 ‘우경화된 민주당’이었다. 심지어 2008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8년간 정부에서 권력을 탈환한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도 경제 부문에선 월가의 금융자본 지배와 신자유주의 무역정책 등의 기조를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도 가팔라졌다.

둘째로 새로운 사회적 쟁점의 등장도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1990년대 낙태와 여성의 권리, 동성애자의 군복무 쟁점을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 동성결혼, 소수자 배려, 불법이민 문제,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공학에 대한 기독교 복음주의 반발로 이어진 사회적 논쟁은 미국 시민들을 이념적으로 양극화시켰다. 민주주의가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삶의 질로 확장될 때 제기되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둘러싼 이념 갈등에서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정치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자신의 소득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쟁점에 대한 가치판단에 걸맞은 이념을 지니게 됐고,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으로 서서히 ‘헤쳐 모여’를 거듭해왔다. 남북전쟁 이래 ‘남부 주에선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공식의 주축이었던 보수적 백인들이, 습관적으로 지지해왔던 민주당을 떠나 공화당에 새 둥지를 틀었다. 1980년대 이후 남부지역은 민주당 아성에서 공화당 텃밭으로 탈바꿈됐다.

전체적인 결과는 진보적 민주당원의 증가와 보수적 민주당원의 감소, 보수적 공화당원의 증가와 진보적 공화당원의 감소로 나타났다. 중도는 사라지고 양극만 존재한다거나, 레드(공화당) 주와 블루(민주당) 주로 너무 가파르게 나뉘어 서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논평이 무성해졌다.

셋째로, 정당 지지의 이념적 재편성과 정치적 양극화의 저변에는 미국 유권자 구성과 정당 지지기반의 변화가 놓여 있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1992년에 비해 2016년 현재 백인 유권자 수는 14%포인트 감소한 데 반해,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은 각각 2%, 4%, 2%포인트씩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각 정당 지지기반에 일정한 변화를 동반했는데, 민주당 지지층에서 유색인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13%포인트 증가했다.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유색인종 비율은 증가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백인이 훨씬 지배적이다.

지난 25년간 대선 후보 지지층의 변화는 더욱 흥미롭다. 공화당 후보 지지층은 남성(7%포인트), 특히 백인 남성(13%포인트), 고졸 이하(8%포인트), 백인 복음주의자(15%포인트)의 증가가 눈에 띈다. 이에 비해 민주당 후보 지지층은 흑인(3%포인트), 히스패닉(4%포인트), 대졸 이상(8%포인트) 증가가 두드러진다.

정당 및 대선 후보 지지층의 이런 변화는 당연히 정당의 대표성에 일정한 변화를 촉진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상대적 빈곤층인 흑인과 이민자들로 구성된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좀더 충실하게 대변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정반대로 더욱 백인 중심의 색깔을 띨 수밖에 없다.

경제·사회 분야와 유권자의 전반적인 양극화 현상은 웬만한 외부 충격에도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가 흔들리지 않게 됐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정당들이 내세우는 정책도 극과 극을 달리며 차별성을 띠게 된다.

이는 클린턴과 트럼프 간 정책 경쟁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세기 동안 계속 증가해 이미 최고점에 오른 소득 불평등, 평균 임금의 감소, 직업 안정성 감소, 교육비와 의료비의 증가 등 열악한 환경은 양당 지지자들을 좌절케 했다. 그러나 그 분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두 후보 지지층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이민(66%)과 테러리즘을 꼽았고, 자유무역(68%)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58%)을 반대하며 무슬림에 대해 더욱 엄격한 조사(57%)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이런 판단의 배경에는 백인 중산층, 특히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의 절망이 놓여 있다. 자유무역의 결과로 생산직 일자리들이 멕시코나 인근 제3세계로 빠져나갔고, 각종 합법·비합법 이민의 증가로 그나마 남아 있던 일자리도 뺏겼으며, 이방인들에 의한 테러 위협의 증가는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적 혐오를 곁들인 트럼프의 중상주의와 고립주의에 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반대로, 클린턴 지지자들은 빈부격차(70%)를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82%)과 기업 규제(70%)에 찬성한다. 이런 해법은 저소득, 고학력, 그리고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 사이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월가의 금융자본주의가 생산해낸 양극화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시민들은 사회적 시장경제에 의한 보편적 복지 시대로 돌아가길 갈망하고 있다. 특히, 경선 기간 버니 샌더스 후보가 공약했던 최저임금 15달러, 공립대학 무상등록금, 국민의료보험 확대 공약을 클린턴이 수용하면서 내부 균열도 봉합된 상태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성추문은 트럼프의 지지율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비디오 공개 이후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 후보와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전·현직 의원들의 지지 철회가 속출하고 있다. 격전지 주들에서 트럼프가 거의 따라잡거나 역전했던 지지율도 재역전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에 대한 전국적 지지율은 급락하지 않고, 콘크리트처럼 버티고 있다. 미국 경제와 정당의 양극화, 대중의 절망, 그에 따른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가장 큰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성대 교수
조성대 교수
더구나 유권자들은 차악을 선택하는 게임에서 최악인 상대방 후보를 택하지 않기 위한 이유를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지지 후보가 그럴 리 없다거나 혹은 개과천선할 거라고 최면을 걸게 된다. 역사상 가장 추한 대선 게임이라고 평가받는 미국 대선의 현주소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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