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해리스버그/AF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다소 앞선 가운데 박빙 승부를 펼치고 있다. 대선의 승자가 각 주의 선거인단 득표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승부처로 보이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2.5%포인트 내의 접전을 보이고 있어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지할 후보나 정당의 결정을 선거일 막바지까지 미루는 부동층을 향한 구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초 시행된 대선 관련 한 여론조사에서 아직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등록 유권자가 약 13%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대체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자동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유권자가 스스로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투표할 게 거의 확실한 이들 중 “클린턴도 트럼프도 아니다”라는 유권자가 13%나 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유권자가 부동층에 머무는 이유는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 전혀 달리 ‘누구도 찍기 싫어서’가 더 적절한 대답인 것 같다. 10월 초 현재 클린턴과 트럼프 후보의 비호감도는 각각 53.4%와 57.7%에 이른다.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도 45%와 55%다. 심지어 ‘끔찍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대답도 33%와 43%나 된다.
조사 결과는 부동층이 남성(16%), 청년(20%), 무당파(25%)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표1 참조). 무당파나 고학력, 청년 유권자들 사이에서 부동층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등록유권자 중에 부동층 청년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가의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 양극화와 ‘슈퍼 팩’(정치활동위원회)으로 대변되는 정치권의 부패는 청년들을 민주당 버니 샌더스 후보의 아웃사이더 열풍의 주역으로 만들었다. 클린턴은 기득권의 화신이었다. 클린턴이 경선에서 승리하자 샌더스 지지자들 중 아직도 상당수가 클린턴 쪽에 합류하길 거부하고 있다.
남성·청년·무당파 등 주요 부동층
샌더스 지지 청년층 아직 클린턴 합류 거부
민주당 지지 백인 저학력층·공화당 지지 백인 고학력층도 부동층으로 돌아서
또한 백인 부동층도 교육수준에 따라 아주 흥미로운 패턴을 보이고 있다(표2 참조). 우선 저학력(대졸 미만) 백인들 가운데 부동층은 2012년(7%)에 비해 거의 두 배(13%)에 이른다. 그런데 공화당 후보에 대한 이들의 지지율은 밋 롬니와 트럼프가 각각 58%로 변화가 없다. 반면, 2012년 버락 오바마와 2016년 클린턴에 대한 백인 저학력층의 지지율은 35%에서 29%로 떨어졌다. 6%포인트가 고스란히 부동층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들은 주로 도시 블루칼라 백인 노동자들과 중서부 백인 농민들로, 히스패닉 인구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는 위기감과 범죄와 테러의 증가로 기독교와 커뮤니티 중심의 백인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그러나 이런 점증하는 위기 가운데서도 일부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인 충성심 때문에 공화당에 새롭게 둥지를 틀기보다는 일단 부동층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5%)에 비해 세 배(15%)에 이르는 고학력(대졸 이상) 백인 부동층의 선택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이들로부터 51%의 지지를 획득했다. 그런데 2016년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39%에 불과하다. 클린턴에게 흘러간 2%포인트를 빼면 나머지 10%포인트가 부동층으로 흘러들어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인종주의적 편견, 여성 비하, 잦은 정책 말 바꾸기 등의 ‘돈키호테’ 트럼프에 대해 고학력 백인들이 신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지지해왔던 정당을 일순간 바꾸기보다는 일단 부동층에 머물며 관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 부동층이 많다는 점은 클린턴 후보에게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과거 오바마 연합의 튼튼한 버팀목이었던 청년 이상주의자들을 품에 껴안을 이렇다 할 전략이 없다는 점에서 클린턴 캠프는 분명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인종주의적 편견은 청년들에게 막다른 골목에서 분명한 전략적 선택지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5일 미국 네바다주 헨더슨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헨더슨/AFP 연합뉴스
이에 비해 고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선택은 트럼프에게 지속적인 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롬니는 전체 백인 유권자들로부터 59%의 지지를 얻고도 패했다. 트럼프는 이마저도 깎아먹고 있는데, 문제는 고학력 백인 유권자들이 마음을 돌릴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는 데 있다. 특히 대졸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압도적이다. 그의 여성관이 혁명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돌려세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부동층의 표심은 어떤 후보에게 유리할까? 답은 누가 덜 네거티브한가, 그리고 누가 더 많이 전략적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다. 아직은 클린턴이 좀더 유리해 보인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