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웃음짓고 있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미국 프로풋볼(NFL) 선수가 32야드(약 29m) 거리에서 공을 찼으나 득점에 실패할 확률.
미국 <뉴욕 타임스>는 17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패할 확률을 이렇게 표현했다. 클린턴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91%라는 것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9%라고 내다봤다.
연이어 불거진 성추문 의혹에 트럼프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클린턴은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 지역에서까지 공세를 펴며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다. <뉴욕 타임스> 조사 결과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클린턴의 선거인단 확보 가능성은 점점 오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도 이날 “클린턴이 과반인 270명을 넘는 317명의 선거인단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승리의 추가 클린턴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주요 언론의 클린턴 지지 비율도 압도적이다. 미 의회전문지 <더 힐>은 발행부수 기준 미국 100대 주요 언론 매체 가운데 클린턴을 지지한 매체는 43개인 반면, 트럼프를 지지한 매체는 단 한 곳도 없다고 전했다. 공화당 후보가 100대 매체로부터 단 한 곳의 지지도 받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론인의 정치기부금도 편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올해 언론인이 기부한 정치자금 39만6000달러(약 4억5154만원) 중 96%가 클린턴에게 쏠린 반면, 트럼프에게 간 정치자금은 4%에 불과했다. 기성 언론을 ‘기득권’이라 표현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낸 트럼프가 본인의 이름을 내건 방송국인 ‘트럼프 텔레비전’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패색이 짙어지는 사이, 클린턴 쪽은 공화당 강세 지역에 선거자금을 쏟아부으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클린턴 쪽 선거대책본부장은 오는 20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리는 미셸 오바마의 지지 연설에 대비해 텔레비전·우편물 광고에 200만달러(22억6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며, 네바다와 미주리주의 선거자금으로 100만달러를 추가 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은 모두 전통적인 공화당 우세지역이다. 당선 뒤 안정적인 의회 의석이 필요한 클린턴은 네브래스카, 메인주 등의 상·하원 선거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의 선거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17일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그린베이/EPA 연합뉴스
그러나 성추문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선거 조작’ 주장이 공화당 지지층에게는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7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턴트’의 여론조사를 보면, ‘개표 작업이 불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 답변한 클린턴 지지자들은 13%에 불과한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절반인 48%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73%가 ‘선거 조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19일 치러지는 마지막 3차 텔레비전 토론을 앞두고, 트럼프가 꺼내든 ‘선거 조작 프레임’은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유색인종 투표율을 낮추는 한편, 트럼프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분석되고 있다. 공화당은 지난 2008년 대선 직전에도 유색인종의 유권자 등록을 돕는 지역 단체인 ‘아콘’에서 유권자 명부 중 일부를 허위로 제출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선거를 조작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등 유색인종 투표율을 낮추기 위한 공세를 편 바 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가 선거 조작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대선 결과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선거가 끝난 뒤 와해된 공화당 내에서 주류 정치인으로서 정치 생명을 이어나가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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