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앨프리드 스미스 기념재단 주최 자선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자신의 ‘대선 불복’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재검표 소송 같은 법정 소송 등을 시사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20일(현지시각) 오하이오 델라웨어 유세에서 “물론, 나는 명백한 선거 결과를 수용할 것이나, 의심스런 결과일 경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방침을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재검표 소송에 비교하며, 그런 선택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앞의 많은 후보들의 규칙들과 전통 모두를 따르고 준수할 것이다”면서도 “요점은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완전히 수용하겠다”면서도 “내가 이길 경우에”라고 단서를 달았다.
트럼프 캠프의 켈리엔 콘웨이 선대본부장도 이날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트럼프는 대선 결과가 실제 나와서 입증, 확인될 때까지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엠에스엔비시>(MSNBC)와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는 어떤 유권자 사기라도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죽은 사람들이 여전히 유권자로 등록된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는 어디서 죽은 이들이 등록됐는지 등 많은 데이터를 샅샅이 뒤져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쪽은 그동안 민주당 쪽이 무자격자들의 유권자 등록을 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트럼프 쪽의 이런 움직임들은 2000년 대선 재검표 소송 사태에서 보듯 미국의 허술한 선거관리 제도를 꼬투리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주별로 선거관리 실태가 다르다. 선거관리가 연방 차원의 일관된 법과 규정보다는 주 차원의 관행에 의해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런 미국의 선거 실태를 문제삼으려면 얼마든지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의 승패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9~15개주 정도의 경합주에서 갈린다. 트럼프 쪽이 경합주의 선거관리에 꼬투리를 잡고, 그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내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선거 불복 관련 법정 소송이 선거결과를 유예하거나,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소송이 가능했던 것은 플로리다 선거결과가 두 후보의 당락을 바꿀 수 있었고, 두 후보의 표차가 워낙 적은데다 뚜렷한 선거 관리 부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어를 지지한 의사가 명백했으나, 투표지의 관리 부실 때문에 무효표가 된 사례가 많았다. 고어는 전체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부시에게 53만7천여표 앞섰으나 플로리다에서 537표 차로 부시에게 지면서 선거인(당시 25명)을 빼앗겨 전체 선거인단 투표에서 266 대 271로 분패했다.
트럼프가 소송을 시사하는 것은 대선 뒤에도 열렬 지지층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당장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유권자 등록 등을 위축시키고,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전략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