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연설을 하던 중 손가락으로 지지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나는 몇몇 여론조사에서 분명히 이기고 있지만, 다른 ‘더러운’ 여론조사에서는 큰 격차로 지고 있다. 내가 선거에서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론조사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다.”
지난달 27일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큰 폭으로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심을 숨기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숨겨진 표심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주요 경합주 11곳의 공화당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론조사가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71%에 달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들의 성향을 ‘부끄러운 트럼프 효과’라 명명하며, 공화당 내부에서는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연 트럼프가 주장하는 ‘숨은 표’는 실제로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달 31일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유권자’들의 실제 투표율이 기적적으로 높아지더라도, 사실상 클린턴 우위의 판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57%에 불과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이 비율이 79%(2012년 대선 당시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로 무려 22%포인트 가까이 상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트럼프가 확보 가능한 선거인단의 최대치는 245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인단 과반인 270명에 못 미치는 수치다. 조사를 진행한 윌리엄 프레이 수석연구원은 “공화당이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트럼프의 당선 확률은 낮은 편”이라며 “트럼프가 주장하는 ‘숨겨진 유권자’들의 표심은 현재로서는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가 조작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다.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방법에는 답변을 꺼리는 경향이 강한 유선전화 여론조사와 비교적 솔직한 답변을 보이는 인터넷 여론조사의 결과를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 둘 사이의 차이가 적을수록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높다고 볼 수 있는데, 온라인 매체 <허핑턴 포스트>가 미국의 모든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해 분석한 결과 10월 한달간 클린턴의 지지율은 전화 여론조사와 인터넷 여론조사 둘 다 거의 비슷한 격차로 트럼프를 앞섰다. <워싱턴 포스트> 역시 8월과 9월 여론조사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전하며 “여론조사 결과는 비교적 높은 신뢰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1일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드시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힐러리 클린턴(왼쪽)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알리시아 마차도(오른쪽) 전 미스유니버스와 함께 연단 위에 등장해 손을 맞잡고 미소를 짓고 있다. 데이드시티/AP 연합뉴스
지지율과 선거인단 등 여러 측면에서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발표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등 투표를 불과 1주일여 앞둔 대선판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클린턴과 트럼프 역시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막판 선거 유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1일 플로리다 데이드시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클린턴은 과거 트럼프가 ‘미스 돼지’ 등으로 불렀던 전 미스유니버스 알리시아 마차도와 함께 등장해 트럼프의 성차별적 면모를 부각했다. 같은 날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의 평균 보험료가 내년에는 25%가량 오를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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