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2008년)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사진)이 “이번 미국 대선은 사실상 조작된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펼쳤다. <뉴욕 타임스>는 이례적으로 선거 당일인 8일치 신문 1면에 크루그먼의 의견 기고를 실었다. 크루그먼이 언급한 ‘부정선거’란 여론조작 등 상징적 의미 성격이 강한데, 주 정부, 러시아 정보국, 그리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심정적 동조자들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크루그먼은 먼저, 이번 선거에서 주 정부들이 비백인 유권자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흑백 차별을 합법화했던 ‘짐 크로 법’(1876~1965년 시행)의 정신이 생생히 살아 있거나, 그 법을 라틴계 유권자까지도 차별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 같았다는 주장이다. 또 미국의 ‘유권자 등록법’은 유권자 등록을 먼저 해놓아야 투표 당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이 유권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데 악용됐고, 또 일부 지역에선 소수자 집단 유권자가 많은 곳의 투표소를 폐쇄해 이들의 투표를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이 지목한 두번째 선거조작범은 러시아 정보당국이다. 그는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민주당 이메일 유출 사건의 배후는 러시아가 확실하다고 봤다. 앞서 지난 7월 위키리크스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지도부 인사들의 이메일 1만9000여건을 웹사이트에 공개해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경선을 편파 진행했다는 사실을 드러낸 바 있다.
크루그먼은 마지막으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 국장을 지목했다. 코미 국장은 투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클린턴 후보의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을 재수사하겠다고 나섰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그의 행위는 고의적 선거 개입이든, 공화당 압박을 받았든 간에 수치스런 직권남용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연방수사국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안보의 중요한 축을 맡는 기구가 선거를 뒤집으려 한 것은 몹시 오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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