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각) 새벽, 도널드 트럼프(왼쪽)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힐튼 미드타운 호텔 연회장에 등장한 트럼프와 그의 가족들이 환호 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9일 새벽 2시49분(현지시각),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맨해튼의 힐튼 미드타운 호텔에서 지지자들 앞에 섰다. “유에스에이(U.S.A)! 유에스에이! 유에스에이!” 새 대통령의 등장에 장내는 환호했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는 말로 시작됐다. “그녀를 감옥에 가둬라”라는 지지자들의 구호에, 트럼프는 “우리 국가를 위한 그녀의 크나큰 봉사에 감사한다”며 당선자의 아량을 보이기도 했다.
여유로운 표정의 트럼프는 “이제 미국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때”라며, 미 전역의 모든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무당파 등 모두에게 “이제 우리가 단합된 국민으로 하나가 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나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여러분에게 지도와 도움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 것이며, 그래야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고 위대한 이 나라를 통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메시지였다. 되레 무슬림과 히스패닉, 여성 등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 발언을 남발했으며, 마지막날 유세에서도 “하나의 신을 믿는 위대한 나라”를 추구했던 트럼프의 반전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부패한 정치권’에 맞선 ‘노동자들의 반격’을 주장해온 그는 선거 승리의 공을 ‘일하는 남성과 여성들’에게 돌렸다. 정부가 시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뜻이 표출된 선거였다고 말한 트럼프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 복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잊혔던 이 나라의 남성과 여성들은 더 이상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국가 재건’과 ‘아메리칸드림의 복원’도 자신의 과제로 꼽았다. 준비해둔 ‘좋은 경제 계획’으로 성장률을 2배로 높일 것이라고도 공언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세계를 향한 메시지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당선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미국의 동맹 국가들을 의식한 듯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전세계에 말하고 싶다.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지만 모든 사람, 모든 국가를 우리는 모두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며 “적대감이 아닌 공통점을, 분쟁이 아닌 파트너십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승리를 예감한 것은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뉴햄프셔 등 동부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모두 우세한 것으로 나오기 시작한 8일 밤 10시 무렵이었다. 한두 시간 전만 해도 다소 썰렁했던 이 호텔 앞에는 수십명이 모여 “도널드 트럼프! 유에스에이!”를 외치며 응원 겸 자축을 시작했다. 성조기와 트럼프 깃발 또는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여기저기서 구호를 외치며 흥을 띄웠고, 근처를 지나던 차량 가운데 일부가 경적을 울리며 이들에 동조했다.
구호를 선창한 이들은 주로 20~30대 젊은이들로,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대부분 백인이었지만 히스패닉계도 종종 눈에 띄었다. 젊은이들 주변으로는 뒤늦게 합류한 것으로 보이는 50~60대 지지자도 여럿 있었다.
트럼프 기념품을 팔던 토니 엔스밍거는 “나도 트럼프 지지자다. 1월부터 트럼프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다니며 이 물건들을 팔고 있다. 훌륭한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는 일하는 모든 미국인들, 당신과 나, 우리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정책을 가장 기대하느냐’고 묻자, 그는 “규제와 세금을 줄여 비즈니스 활동을 더 장려하고, 이는 더 많은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8년 동안 미국의 분열은 심화됐고, 힐러리 클린턴은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만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있던 중년 남성이 다가와 “정확하게 맞는 말”이라며 흥분한 듯 엔스밍거와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주류 언론들은 거의 전부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는데, 정작 국민들은 트럼프를 선택한 게 놀랍다’고 말하자, 엔스밍거는 “다 돈 때문이다. 그들과 클린턴, 다 월가로 연결되지 않느냐.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우리 모두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흥분한 듯 말했다.
뉴욕/이순혁 기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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