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개표 결과가 윤곽을 드러낸 8일 밤(현지시각) 뉴욕의 한 컨밴션 센터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대다수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들의 예측을 뒤집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는 대이변이 연출되자 미국 사회는 환호와 절망이 극적으로 엇갈렸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온 진보 성향의 유권자와 지식인, 사회적 소수자 집단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노벨경제학상(2008년)을 받은 경제학자이자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도 이날 밤늦게 ‘우리가 몰랐던 나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극심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는 “이 나라가 인종적 편견과 여성혐오에서 벗어난 건 아닐지라도 훨씬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회가 됐다고 여겼는데, 선거 결과는 ‘우리’가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탄했다. 그는 “미국은 실패한 나라, 실패한 사회인가?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스스로를 추슬러 세우고 앞길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오늘 밤은 끔찍한 사실이 드러난 밤이며, 엄청난 절망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자위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썼다.
토머스 프리드먼도 <뉴욕 타임스> 기고에 자신의 심정을 “집 없는 노숙자”에 빗대며 “트럼프의 당선이 나는 63살 평생 어느 때보다 두렵다. 미국 사회가 고칠 수 없을 만큼 분열돼 정부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란 두려움이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인종·젠더·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 사회의 소수자 그룹에 속하는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승리에 낙담하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노골적인 인종 차별과 이민자 혐오 발언을 해온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의 다문화 사회 전통에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대선의 개표 결과가 윤곽을 드러낸 8일 밤(현지시각) 콜로라도주 그린우드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민주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 후보의 승리 선언에 환호하고 있다. 그린우드/ AFP 연합뉴스
이날 밤 ‘클린턴 승리’를 확신하며 개표 실황을 지켜보기 위해 뉴욕의 한 컨벤션센터에 모인 클린턴 지지자들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들뜬 축하 분위기에서 침울한 침묵으로 바뀌어갔다고 미국 경제지 <포천>이 9일 전했다. 빅토리아 비슬리(66·여)는 “내가 꿈을 좇는 것처럼 클린턴이 꿈을 좇는 것을 보기 위해 여기 왔다”고 말했다. 출산을 앞둔 그의 딸 리비아(40)도 “내 아이를 안정된 나라에서 키우고 싶다”며 “클린턴이 백악관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녀의 꿈과 희망은 밤 사이에 사라졌다.
트럼프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9일 새벽, 클린턴 지지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거나 말을 잃은 채 서로를 껴안았다. 누군가 “다 끝난 거야?”라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클린턴 선거캠프의 존 포데스타 선대위원장이 “클린턴 후보가 오늘 밤엔 발언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지 않나? 개표를 끝까지 지켜보자”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상 패배 선언의 유보일 뿐이었다. 클린턴 지지자인 데이나 마사르스키(36)는 “12시간 전만 해도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는데…”라며 쓸쓸한 모습으로 자리를 떠났다. 뉴욕/이용인 특파원,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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