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한 맥주집에서 만난 엘레인 페트루치(50·사진). 그는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 쪽 대의원이었다. 그는 본선에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한테 (대선) 후보 지명을 도둑맞은 겁니다. 우리(샌더스 지지자들)는 도저히 클린턴한테 투표할 수 없었어요.”
지난 15일(현지시각) 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 맥주집에서 만난 엘레인 페트루치(50·사진)는 울먹이다시피 했다. 페트루치는 미시간의 샌더스 쪽 대의원이자 자원봉사 관리 책임자였다. 최소한 미시간에서, 클린턴 진영은 샌더스 지지자를 거의 흡수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미시간 승리 한 축이 백인 노동자였다면, 다른 축은 샌더스 지지자들의 클린턴에 대한 반감과 저항이었다.
미시간은 지난 3월8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최대 이변을 연출했다. 경선 전만 해도 모든 여론조사는 13~27%포인트로 클린턴이 앞섰다고 발표했지만 샌더스는 49.8% 득표로 클린턴(48.3%)을 눌렀다. 국제무역이 일자리를 앗아갔다는 샌더스의 캠페인이 먹혀들었다.
이때문에 지난 7월과 10월 위키리크스 해킹을 통해 드러난, 클린턴에 유리하게 진행된 민주당의 불공정 경선관리는 샌더스 지지자들을 분노케 했다. 페트루치는 “우린 클린턴이 한 일을 다 알아버렸다”며 “대통령 후보란에 어떤 후보에게도 투표하지 않은 사람이 9만명쯤 된다. 상당수가 샌더스 지지자”라고 추정했다.
미국 미시간주 머콤카운티에는 포드자동차 공장도 있다. 노동자 밀집지역인 이곳은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이번 대선에서 보호무역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상처는 깊었다. 샌더스가 클린턴을 공식 지지했음에도, 이들은 돌아서지 않았다. 질 스타인 녹색당 후보 선거운동을 도와준 이들도 있었다. 미시간에서 트럼프와 클린턴의 표차는 0.3%포인트(1만여표)였다. 만일 미시간(선거인단 16)과 펜실베이니아(20)를 이겼다면, 지금 대통령 당선인은 클린턴이다.
‘클린턴을 찍지 않음으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페트루치는 “외국인인 당신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미국인 입장에선)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그 근거는 트럼프를 찍었던 백인 노동자들의 정서와 일치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북미자유무역협정 서명으로 미시간과 오하이오 등 미 중서부가 초토화됐는데, 힐러리 클린턴은 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또 빼앗게 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해왔다.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동성애 운동, 소수민족 인권운동 등 많은 문화적 진보주의자들이 민주당 우산으로 들어왔다. ‘문화 전쟁’에서 미국의 진보는 승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핵심 지지기반인 노동자 중심 백인 저학력 유권자층에서 멀어졌다. 그 대가는 인기영합주의와 인종주의가 범벅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샌더스는 선거에 패한 민주당에게 “워싱턴을 벗어나 노동자를 만나라”고 했다. <끝>
디트로이트/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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