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팜비치/AP 연합뉴스
러시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약점을 들출 만한 개인정보도 수집해 왔으며,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 사이에 지속적인 정보 교환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간 워싱턴 정계나 언론 등 음지에서만 떠돌던 의혹들이 미 정보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보고됐고, 이에 대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자, 의회 지도부가 보고받은 미 정보기관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트럼프와 관련된 불리한 정보도 수집해왔다는 의혹이 담긴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고 <시엔엔>(CNN) 방송 등 외신이 10일 전했다. 2장 분량의 첨부자료에는 러시아가 수년간 트럼프와 관련된 개인·금융 정보를 수집해왔다는 내용과,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뇌물 등 호의적 거래들을 제안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클린턴 쪽에 불리한 정보만 공개했으며,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러시아 정부의 중개인들과 트럼프 캠프 사이에 지속적인 정보 교환이 있었다는 의혹도 포함됐다.
<뉴욕 타임스>는 특히 러시아가 입수한 정보 가운데, 트럼프가 2013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호텔에서 성매매를 한 영상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대선 당시 이 영상을 확보했음에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러시아가 트럼프 취임 뒤 러시아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협박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전직 영국 정보요원이 이번 의혹과 관련한 최초의 정보를 입수했으며, 지난해 12월께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이 영국 외교 관계자에게 관련 문서를 전달받아 연방수사국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10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 국장은 “트럼프와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느냐”는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수사중인 상황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엔엔>은 “의혹 수준의 정보가 대통령과 당선자에게 직접 보고된 건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지적하며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전직 영국 정보요원의 정보가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게이트의 한가운데에 트럼프가 있다는 의혹들이 속속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이는 취임을 불과 열흘 앞둔 트럼프에게 대형 악재가 되고 있다. 정보기관들의 공식 수사 결과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가짜 뉴스-완전히 정치적인 마녀 사냥!”이라는 글을 올리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연방수사국이 이런 정보를 최초로 접한 시점에도 의혹이 제기된다. <시엔엔>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연방수사국은 이미 대선 전인 지난해 8월 영국 비밀정보부(MI6)를 통해 관련 정보를 받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대선 개입’ 비판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수사에 대해선 대선 전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혀온 연방수사국이 트럼프 관련 수사에는 소극적으로 임한 이유를 추궁받을 수밖에 없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