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의 해리스버그 국제공항에 도착해 미군 장병들과 인사하고 있다. 미들타운(펜실베이니아주)/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틀 연속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내야 한다고 고강도 압박을 가했다. 파장이 확산되자, 한·미 고위 당국자들은 양국 간 이미 합의된 내용을 재확인한다는 식으로 긴급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트럼트 대통령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에 비춰볼 때, ‘사드 배치 청구서’를 언제든 다시 꺼내들 수 있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각)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진행한 <워싱턴 타임스>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하느냐”며 “정중하게 말하건대,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는) 환상적인 방어 시스템이다. 그것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27일에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드 비용을 한국에 부담시키겠다는 입장을 처음 밝힌 뒤 “사드는 10억달러 시스템”이란 얘기를 수차례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전날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협상한 것으로, 미국에 매우 나쁜 조건”이라며 재협상 혹은 폐기 의사를 다시 한번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에 대해 한·미 양국에서 거센 비판이 나오자,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오전(한국시각) 35분 동안 긴급 전화협의를 했다.
김 실장과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날 통화에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 비용 부담과 관련해 한-미 양국 간 기합의된 내용을 재확인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언급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 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가 전한 통화 내용이 맞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한·미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사실상 부인하는 것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 국방부는 지난해 7월 체결한 약정을 통해 한국 정부는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쪽이 부담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미 고위 관리들이 불끄기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지 않는 한 불씨가 쉽게 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심을 쏟는 문제에 대해선 강한 집중력을 보여왔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자신이 두번씩이나 언급한 사드 배치 비용 청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부담 요구를 한국에 통보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배경과 사실관계가 여전히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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