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도요타의 수소전기차 미라이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강화한 자동차 연비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자동차 연비기준을 강화해 가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움직임이기에 자동차 업계 전반에 대 혼란이 예상된다.
미국 환경보호국(EPA)과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일 “미국인들이 더 안전하고, 구매가능하며, 환경친화적인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2021~2026년에 오바마 행정부가 2012년 정한 연비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2017~2025년’에 적용되는 자동차 연비기준을 확정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자동차 업체들이 해마다 연비개선 노력에 나서 기준이 적용되는 최종해인 2025년엔 최초해인 2017년보다 연비를 30% 개선해야 하고, 이를 맞추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게 했다. 그 기준에 따른 2025년의 목표치는 ‘1갤런에 50마일(1ℓ당 약 22㎞) 주행’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준을 대폭 완화해 2026년까지 적용되는 목표치를 오바마 행정부가 설정한 2020년 목표치로 묶은 뒤 더 이상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이럴 경우 연비기준은 1갤런에 37마일(1ℓ당 약 15.7㎞)에 머물게 된다. 애초 계획보다 연비기준이 대폭 하락하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6년 7월 발표한 연비기준에 대한 ‘중간평가 보고서’에서 “각 자동차 업체들이 기준을 앞당겨 달성하고 있다”며 2012년 설정 기준을 달성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비기준을 대폭 낮추려는 것은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인 자동차 업계의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환경보호국은 이날 발표 자료에서 “현재 기준으로 인해 신차 제조비용이 3만5000달러까지 높아졌다. 이는 미국의 많은 가정에서 살 수 없는 가격이다. 현재 기준을 유지하면 새 제안으로 바꿨을 때에 견줘 자동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2340달러의 비용이 더 들고,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50년간 5000억달러가 넘는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앤드류 휠러 환경보호국장 대행은 “우리의 제안은 더 많은 미국인들에게 새롭고 안전하면서 오염물질을 덜 내보내는 치를 셀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며 “우린 이와 관련한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완화 계획에 미국 언론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조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역행”이라며 “자동차 업계에선 현재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이라고 보지만, 이번 제안 역시 미심쩍어 한다. 더 나은 연비를 위한 (기술) 진보를 막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엔엔>(CNN) 방송도 “이번 조처가 표면적으로는 자동차 산업이 반기는 선물로 보이지만, (이미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많은 노력해 온) 관련 산업 전반에 매우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연비와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제공하는 곳은 유럽연합(EU)으로 2021년까지 2015년에 비해 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5년보다 30% 줄이도록 하고 있다.
환경보호국은 한발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주가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행사해 온 자동차 관련 규제 부과 권한을 철폐할 예정이다. 약 40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가장 큰 자동차 시장으로 자동차 매연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 때문에 자동차 매연 등에 독자적인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미국 사회 전체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한 예로 캘리포니아주는 전기 자동차 판매 비율을 의무화하는 등 ‘제로 배출차’(ZEV) 계획 등을 실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처에 대해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 지사는 “미국 국민들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내용”이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런 멍청한 일과 싸울 것”이라고 반발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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