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약업체 큐어백 연구진이 지난 12일(현지시각) 튀빙겐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코로나19 백신 연구 개발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튀빙겐/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독일 제약사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끈한 독일 정부가 이를 저지하겠다고 나서는 등 백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의 바이오기업 큐어백 연구진에게 수십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제시하면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미국에 넘길 것을 회유했다고 15일(현지시각) 독일의 주간지 <벨트 암 존탁>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가 지난 2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책회의에서 큐어백의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다니엘 메니헬라를 만나 큐어백의 연구성과를 독점하기 위해 회사를 인수하거나 회사 연구진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타진했다는 것이다. 잡지는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우려한 독일 정부가 재정지원을 통해 큐어백을 계속 독일에 붙잡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독일 자본과 인력으로 키워낸 백신 전문 기업의 코로나19 백신을 미국이 독점하려 시도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독일 정치권은 크게 반발했다. 기독민주당 소속 에르윈 뤼델 의원은 “지금은 국가적 이기심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이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사회민주당의 배르벨 바스 의원도 “팬데믹(전세계적 대유행)은 전 인류의 문제이지 ‘미국우선주의’ 사안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독일 정부도 관련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며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정부 내 여러 인사로부터 그게 사실이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며 “내일(16일) 열리는 위기위원회에서 관련 사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거세지자, 큐어백의 최대 주주 디트마르 호프가 나서 “이 백신은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쓸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에 독점권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염병 백신 및 암·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주력분야로 삼는 큐어백은 2000년 설립됐으며 독일 튀빙겐에 본사를 두고 있다. 독일의 바이오앤텍, 미국 모데나 등과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큐어백은 코로나19 실험 백신 후보 물질 2개를 선정했으며, 이르면 6월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큐어백 외에도 현재 35개 제약회사 및 연구기관들이 백신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최소 4곳이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모데나가 45살의 건강한 여성 자원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실험용 백신의 부작용을 평가할 임상시험을 16일부터 시작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다만 임상시험을 통과하더라도 통상적으로 백신이 실제 인증받기까지는 1년에서 18개월까지 걸린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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