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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음울하게 다가오는 ‘카불 최후의 날’

등록 2021-07-05 11:39수정 2021-08-16 15:46

탈레반 아프간 3분의 1 장악
정부군 전투 포기 뒤 도망
미국 비상 탈출 위해 헬기 준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50㎞ 떨어진 바그람 미군 기지의 모습. 지난 5일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EPA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50㎞ 떨어진 바그람 미군 기지의 모습. 지난 5일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EPA 연합뉴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철수 뒤 남베트남 정부가 붕괴하는 상징적 장면이었던 ‘사이공(현재의 호치민시) 최후의 날’과 유사한 ‘카불 최후의 날’이 음울하게 다가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군 일정이 가속화되면서, 탈레반의 진군과 동시에 아프간 현 정부의 붕괴 조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간 반군인 탈레반은 지난주 8개 주에서 적어도 28개 지구를 장악해, 지난 4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진공 작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데페아>(DPA) <에이피>(AP) 통신이 5일 보도했다.

특히, 탈레반은 북동부 바다크샨 주에서만 주말 동안 적어도 11개 지구를 확보했다고 지역 관리들이 전했다. 남부가 세력권인 탈레반이 북부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은 탈레반 세력권의 전국적 팽창을 의미한다.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의 421개 지구 중 3분의 1을 장악한 상태이다.

바드크샨에서 함락된 지구 대부분은 정부군과 경찰이 전투도 없이 포기한 곳들이라고 지역 관리들은 전했다. 바드크샨 주위원회의 모히불 라만은 <에이피> 통신에 “불행하게도 다수의 지구들이 전투도 없이 탈레반에 넘어가고 있다”며 지난 3일 동안 함락된 10개 지구 중 8개가 전투도 없이 넘어갔다고 밝혔다. 수백명의 병사, 경찰, 정보 인력들이 기지를 포기하고 주도인 파이자바드로 도주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파이자바드에서 5일 주도 주변의 방어를 강화하는 대책회의 도중에도 일부 고위 관리들은 카불로 도망가는 상황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정부군은 공중지원과 보급품이 부족한 데다, 사기도 바닥인 상태이다. 탈레반에 밀린 정부군은 국경을 넘어서 타지키스탄으로까지 도주하고 있다. 약 300명의 아프간 병사들이 지난 3일 새벽 바드크샨에서 국경을 넘어 타지키스탄으로 퇴각했다고 타지키스탄 정부가 발표했다.

최근 탈레반의 공세가 북부 지역에 집중되는 것은 북부 지역의 반탈레반 세력 형성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라고 카불의 싱크탱크 ‘아프가니스탄 분석가 네트워크’가 지적했다. 북부 지역은 정부와 반탈레반 군벌들의 세력권으로 지난 2001년 미군의 아프간 침공 때 탈레반을 축출하는 근거지였다.

수도 카불도 미군 철수와 탈레반 진공의 자장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5일 아프간 주둔 미군의 최대 기지이자 상징이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전날 미군 철수가 완료된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군에게 반환되는 형식이나 사실상 폐쇄 수순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기지는 약탈자들에게 노출됐다는 아프간 관리들의 전언은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9월 전까지 완전 철수 일정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 바그람 기지 철수로 아프간에서 미군의 현지 작전은 사실상 종료됐고, 실질적인 전투병력 역시 이미 철수한 상태이다.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하거나 자문하는 병력도 더이상 없다. 다만 카불의 미국 대사관 단지를 경비하는 650명의 병력이 남아있다.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의 비상 소개 작전도 준비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일 보도했다. 미국 대사관 단지에서는 이미 장비 및 민간인들 철수가 시작되고 있다. 비상 소개 작전에는 대사관과 카불 국제공항을 잇는 헬기 준비 등이 포함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옛 사이공 함락 때처럼 대사관에서 헬기를 타고 빠져나가는 상황을 대비한 것이다.

카불 국제공항의 경비는 터키가 미군 철수 뒤에도 맡기로 현재 탈레반 쪽과 협상 중이다. 이는 탈레반 쪽도 미군 철수 이후에도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카불 국제공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당국은 미군 철수 이후 현 아프간 정부는 6개월~2년 사이에 붕괴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부 붕괴가 시간 문제라는 의미이다. 아프간 정부는 붕괴하고 있는 정부군을 대신해, 지난달 말 이후 과거의 군벌이나 민병대 세력을 재무장시키고 있다.

군벌이나 민병대 부활이 탈레반에 얼마나 저항력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바다크샨 주에서 재무장한 민병대들도 전투를 하는 시늉만했다고 현지 관리들은 전했다. 무엇보다도 군벌과 민병대 부활로 미군 철수 이후 무정부적인 내전의 격화가 우려된다. 아프간에서는 지난 80년대 소련군 철수 이후 군벌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가, 결국 탈레반에 의해 평정됐다.

미국은 미군 철수 이후에도 아프간 안보를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사이공 최후의 날’과 유사한 ‘카불 최후의 날’로 다가가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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