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의 경찰서에 탈레반 깃발이 올라가 있고 옆에 전투원이 서 있는 모습을 탈레반이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카불 함락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탈레반이 13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50㎞밖에 떨어지지 않아 카불로 들어가는 관문인 로가르주의 주도 풀리알람을 장악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전날인 12일 탈레반은 카불에서 남동쪽으로 150㎞ 떨어진 주요 도시 가즈니도 점령했다. 가즈니는 카불과 칸다하르를 잇는 고속도로에 위치한 거점 도시다. 카불 남쪽의 군사 요새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지난 10일에는 카불에서 북쪽으로 225㎞ 떨어진 도시 풀이쿰리를 점령했다. 풀이쿰리는 탈레반이 접수한 8번째 주도이자, 카불에서 북서 방향으로 연결되는 전략 요충지다. 탈레반이 풀이쿰리에 이어 가즈니, 플리알람까지 점령함으로써, 카불을 남·북 양쪽에서 압박하며 진공할 수 있게 됐다.
탈레반은 13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칸다하르를 점령했다고도 선언했다. 아프간 정부 관계자도 “칸다하르가 12일 밤 탈레반에 넘어갔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아프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탈레반이 수주동안 포위 공격했던 헤라트도 12일 함락됐다. 헤라트주 주도 헤라트 도심에서도 탈레반 대원들이 무기를 발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탈레반 깃발이 경찰서에 나부끼는 동영상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헤라트는 카불, 칸다하르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최대 도시이다. 헤라트는 이란 등 중동으로 가는 상업 교역지이다. 헤라트는 칸다하르, 라슈카르가와 함께 탈레반이 2주 전부터 공략하던 도시 중 하나였다. 아프간에서 가장 넓은 헬만드의 주도인 라슈카르가도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소식통들이 전하고 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칸다하르까지 포함해 아프간 34개주의 주도 중 18곳이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당국자를 인용해 카불이 90일 안에 탈레반에게 함락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급속한 세력 확장이 이뤄지자, 미국과 영국은 대사관 인력 등 민간인 소개를 위해 병력을 급파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1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철수를 돕기 위해 3000명의 미군 전투병을 현지에 투입하기로 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부사령부에 있는 3개 보병 대대가 앞으로 사흘 안에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엔엔>(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오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보고를 들은 뒤 미군 배치 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커비 대변인은 아프간에 병력 배치를 ‘전투 임무’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보병과 해병대가 기관총, 박격포, 기타 중화기를 지닌 채 배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투입되는 군대는 기존에 아프간 주변에 배치돼 있는 해병대에서 2개 대대, 육군에서 1개 대대다. 이들 3개 대대 투입에 이어, 다음주 이후에는 필요시에 대비해 추가로 3500명의 병력이 쿠웨이트로 보내져 대기할 것이며, 또 다른 1000명이 카타르에 배치돼 미군에 협력한 아프간 민간인들의 대피를 도울 예정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모두 합쳐 약 8000명의 병력이 투입되는 것이며, 이들은 모두 공격받았을 때 자기방어를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미국은 아프간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카불 주재 미 대사관 직원을 줄이기로 하고, 아프간에 머물고 있는 미국 민간인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사관 축소를 명령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탈레반 군사 교전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 결과로 아프간의 폭력과 불안정성이 증대하는 것은 큰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안보 상황에 맞춰 카불에서 민간인 수를 추가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대사관은 열려 있다”며 “핵심 인력”이 남아서 외교·영사 업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포기(버리고 떠나는 것)가 아니다. 대피도 아니다. 완전한 철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몇 명이 남을지는 밝히지 않았다.
영국도 이날 600명의 병력을 파견한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또, 벤 월러스 국방장관은 카불의 안전지대인 그린존 외곽에 있는 영국대사관을 더 안전한 중심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월러스 국방장관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다음달 11일까지 미군 철수 계획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그는 13일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 철수 뒤 아프간이 “실패 국가”가 될 수 있다며 “이것(미군 철수)이 올바른 시점이 아니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알카에다가 아마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약 200명의 영국 외교관과 병사들이 소개되고 있다. 카불 주재 독일 대사관도 12일 트위터에서 모든 독일 시민들은 아프간을 가능한 한 빨리 민간 여객기를 이용해 떠나라고 공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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