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 주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아프간을 떠나기 위해 모여들어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한 다음날인 16일(현지시각) 오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시민 수백명이 활주로에서 비행기 한 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또다른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비행기 탑승 계단에 매달려 올라갔다. 1975년 남베트남 패망 당시 ‘최후의 탈출’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로이터> 통신은 목격자 말을 인용해 16일 공항에서 최소한 5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공항 경비를 맡은 미군이 15일 오후부터 몰려오는 인파를 제지하려고 경고사격을 가했지만, 사망 사건과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카불 공항은 16일 오후부터 민항기 운항이 중단되고 군용기만 이륙하고 있다.
아프간인들은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의 잔혹하고 억압적인 공포정치가 재현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당시 아프간 시민들은 도둑의 손을 자르고 불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등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샤리아) 적용을 경험했다. 특히 12살 이상 여성은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 혼자 거리를 다니는 것조차도 막을 정도의 반여성 정책이 부활하리라는 공포가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탈레반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 형성을 지향한다고 했다.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존중한다”며 “히잡을 쓴다면 교육을 받고 직장에 갈 수 있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워싱턴 포스트>를 보면, 탈레반이 2001년 실권 이후 ‘현실정치 감각’을 키우며 변모했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하지만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 탈레반 지도부의 생각일 뿐, 여전히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갇힌 강경파도 많다.
탈레반이 지난 8일 점령한 북부 최대 도시 쿤두즈의 사례를 보면, 탈레반이 처음에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지만 결국 공포에 기대리라는 우려가 커진다. 15일 <뉴욕 타임스>를 보면, 쿤두즈에서 공무원들이 신변 우려로 업무를 보지 않고 집에 피신한 탓에,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쓰레기가 쌓였다. 탈레반은 “지하드(이슬람 성전)는 시정과 관계가 없다”며 시 공무원들에게 복귀를 설득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탈레반 대원들은 시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복귀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뒤에는 다시 “앞으로 여성 공무원은 집에 있고 할랄 의식을 거치지 않은 냉동 닭고기는 금지한다”고 명령했다.
<비비시>에서 10여년간 아프간 소식을 전해온 얄다 하킴은 “20년 동안 서방은 새로운 세대의 아프간인에게 영감을 주고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을 보호했고, 그들은 자유와 기회와 함께 성장했다”며 “이제 그들은 그들이 속해 있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 세계에서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