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탈레반 전사가 23일 카불 시내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사회 규율을 하나둘씩 후퇴시키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지방정부가 이번에는 이발소에서 수염 깎는 것을 금지시켰다. 탈레반의 ‘풍속 규제’가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비비시>(BBC)는 26일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 종교경찰이 이발소와 목욕탕에서 수염을 깎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헬만드주 종교경찰은 “오늘부로 이발소에서 수염을 깎거나 음악을 트는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됨을 긴급히 통지한다”고 밝혔다. 위반자는 처벌 받는다는 경고 속에 헬만드주 이발소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지가 붙었다.
수도 카불의 일부 이발사들도 이런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카불의 한 이발사는 “(탈레반) 전사들이 계속 찾아와 수염을 깎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불의 다른 대형 이발소 운영자는 정부 관리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해 “아메리칸 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지 말고 수염도 깎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1996~2001년 ‘1차 통치기’에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라며 남자들을 대상으로 이색적 머리 스타일을 금지하고 수염을 못 깎게 했다. 탈레반 정권이 몰락한 뒤 도시를 중심으로 남성들 사이에서는 머리를 짧게 깎고 면도도 깔끔하게 하는 게 유행이 됐다.
하지만 8월15일에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이발사는 “전에는 손님들이 다른 머리 스타일을 요구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에 말했다. 면도를 하고 길거리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수염을 다듬지 않는 남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스스로 몸을 많이 가리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손님 발길이 끊긴 이발소들은 탈레반의 규제에 살 길이 막막해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앞서 탈레반은 여성들의 대학 교육을 허용했지만 눈만 드러내는 니캅 착용을 조건으로 했고, 강의실에서 커튼으로 남성들과 분리돼 공부하도록 했다. 25일에는 서부 헤라트에서 납치범 4명의 주검을 광장에 전시하는 등 탈레반의 가혹한 통치 방식이 부활하는 양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