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23일 카불의 한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사는 파티마(15)와 쿠디자(19)는 23일 아침(현지시각) 학교에 가며 지난해 치른 성적이 궁금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다녔던 교실에 들어선 지 몇분도 안 되어 선생님에게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 교육당국은 이날 여성에게도 교육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끝내 7학년~12학년 고학년 여학생의 입실을 불허하라는 지침을 일선 학교에 통보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우리로 치면, 여학생에게 초등학교 교육만 허용되고 중학교부터는 금지한 것이다.
탈레반은 지난해 8월 카불을 점령한 뒤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 수립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부만 빼고 대부분의 학교 문을 닫았다. 탈레반 임시정부의 교육부는 최근 일곱달 만에 학교교육 재개를 예고하면서 여학생들에게도 모두 교육이 허락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실제 이번주 초 교육부는 성명을 내어 23일 학교가 다시 문을 열 때 “모든 학생”이 학교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막판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여학생에 대해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금지했다. 카불의 학교 당국자는 전날 밤까지도 지침이 바뀐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탈레반 실력자 하이바툴라 아쿤자다가 탈레반 고위인사들을 남부도시 칸다하르에 소집해 개각인사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에이피>(AP)가 전했다. 탈레반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이번 결정이 시골 지역에 뿌리깊은 완고한 탈레반 지지세력과 강경 보수세력이 국제사회에 유화적인 온건세력에 승리를 거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날 학교에서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파티마는 “우리는 교육받는 데 정말 오래 고통받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라고 했을 때 우리는 정말 슬펐다. 모두 울었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파티마처럼 슬픔에 잠겨 교문 밖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넘쳐났다. 한 여학생은 “우리도 사람이다. 왜 우리는 학교에 못가는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 마음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절규했다. 이런 가운데 카불 등에서는 학교가 다시 문을 연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은 탈레반기를 손에 들고 나란히 서서, “신은 위대하다”고 소리쳤다.
탈레반 교육부 아지즈 아흐마드 라얀 대변인은 “우리 지도자들이 결정하면 곧 고학년 여학생들도 학교에 올 수 있을 것”이라며 “탈레반 임시정부는 문화적 종교적 의무를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번 조처에 대해 미국 특별대표 토마스 웨스트는 트위터에 “아프간 국민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을 어긴 것”이라며 “충격과 깊은 실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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