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스터디 그룹의 공동의장이며 9/11 위원회 부의장인 리 해밀턴(왼쪽)과 민주당 전 상원 대표인 탐 데이셸(오른쪽)이 워싱턴에 위치한 ‘아메리칸 진보’라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미국 국내의 안전과 다른 현안들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2006년 11월 29일. (AP/연합)
15개 연대 철수 제안
부시는 이라크 총리한테도 퇴짜
파월 전 국무, 이라크는 내전상황 인정해야
부시는 이라크 총리한테도 퇴짜
파월 전 국무, 이라크는 내전상황 인정해야
이라크 철군안이 공식적으로 제안될 전망이다.
이라크전 관련 정책대안을 마련중인 이라크스터디그룹은 오는 6일 이라크전 해법의 하나로 미군 15개 연대 철수를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30일 보도했다.
이 계획이 실행되면 이라크에서 미군은 약 4만5천~7만5천명 정도가 철수하게 된다. 현재 미군 연대병력은 3천~5천명 수준이며 , 이라크 주둔 미군은 14만4천~15만명이다.
그러나 이라크연구그룹은 철군 시기를 못박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내 철군 여론을 진정시키는 한편 내전 단계인 이라크 상황을 책임지고 진정시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한테 전달하려는 이중포석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해석했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화일로에 있는 이라크전 문제를 논의하려고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지만, 회담 직전 취소됐다. 중간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린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이라크 총리의 ‘퇴짜’에, 부시 대통령이 나라 밖에서도 레임덕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애초 29일 저녁(현지시각)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알말리키 총리와 만나 이라크 안정화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미국의 우방으로 불리는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이 함께하는 3자회동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먼저 암만에 도착해 압둘라 2세 국왕과 만난 알말리키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 이날 만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두 정상은 이런 결정 내용을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가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함께 공군 1호기를 타고 암만으로 날아오던 부시 대통령한테 전했다.
외신들은 그러나 알말리키 총리와 부시 대통령의 30일 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는 백악관의 설명을 전했다. 백악관은 이번 일을 “연기”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예정된 정상회담 취소를 불과 몇 시간 전에 비행기를 타고 오던 외국 정상한테 통보한 드문 일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댄 바틀릿 백악관 보좌관은 알말리키 총리가 압둘라 2세 국왕이 양자회담에서 이미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며, 둘은 그래서 “3자회담을 할 필요가 있는 의제가 없다”고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바틀릿 보좌관이 “이것(3자회담 취소)을 확대해석하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는 기자들과 백악관 관리들 사이에 회담 취소 배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수모’를 안긴 알말리키 총리의 회담 취소를 두고는 두 가지 관측이 나온다.
우선 이라크의 유력한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정치세력에 속한 각료 5명과 의원 30명이 미-이라크 정상회담 취소를 주장하며 이날 의회와 내각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게 배경으로 거론된다. 알사드르 그룹은 알말리키 총리 정권을 지지해주고 있지만,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반미 성향을 보여왔다. 미군은 알사드르가 이끄는 마흐디 민병대 토벌에 나섰다가 알말리키 총리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수니파 저항세력이 알사드르의 거점인 바드다드의 사드르시티에 동시다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해 200명이 넘게 숨지는 개전 이래 최대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 후 사드르시티를 방문한 알말리키 총리한테 돌멩이 세례가 가해지는 등, 알사드르 진영의 분위기는 크게 격앙돼 있다.
또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바그다드에서 알말리키 총리를 면담한 뒤 지난 8일 부시 대통령한테 올린 보고서가 28일 <뉴욕타임스>에 공개된 것도 그를 크게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서 해들리 보좌관은 알말리키 총리가 “강력해지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의 상황 통제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해들리 보좌관은 이같은 이유로 7개월 된 알말리키 정권의 재편성 필요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알말리키 총리는 지난 2월 시아-수니파 분쟁 격화 이후 양 종파, 특히 시아파를 진정시키는 데 앞장서라는 미국의 압력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가 알사드르 세력을 비롯해 자신의 지지기반인 시아파를 무장해제시키는 데는 능력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알말리키 총리는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왔다.
한편, 29일 두바이를 방문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나는 지금의 이라크 상황을 내전으로 본다”며, “내전은 아니다”는 부시 대통령의 시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견해를 나타냈다. 파월 전 장관은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싶기 때문에 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며 “세계 지도자들은 이라크가 내전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정권의 핵심이었던 파월 장관의 이런 발언으로 “이라크 폭력사태는 알카에다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며 내전이라는 규정을 일축한 부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