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부정선거 항의 시위사태 이후 이란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테헤란을 방문한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교수가 시위 사태 이후 최고지도자를 둘러싼 이란 사회의 갈등과 고민을 전해왔다.
20년만에 최대 정치적 위기
권력구도 성직자서 군부로
최고지도자 후계논쟁 본격화
이란 사회에선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거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국민들의 저항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도권 내의 치열할 권력투쟁이다. 대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잠잠해진 듯 보이지만, 이란 내부에선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시위대의 구호는 폭풍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사진)를 향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지난 6월13일 대선 결과 발표 직후 거리로 뛰어나온 시위대들의 첫 번째 구호는 “무사비, 무사비, 우리의 표를 돌려 달라”였다. 그 다음날 시위대가 “쿠데타 정부는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정권퇴진운동 조짐을 보였다. 곧이어 나온 구호는 “오! 호세인, 미르 호세인”이었다. 호세인은 시아파 제3대 이맘이고, 미르 호세인은 개혁파 지도자 무사비의 이름이다. 시위대는 무사비를 종교운동과 결합해 칭송한 것이다.
특히 지난달 19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을 선언한 연설 이후,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구체적으로 하메네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독재자로 규정한 것이다.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1989년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란 종교계는 하메네이가 지지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명의 그랜드 아야톨라 가운데 누리예 하마다니만 아마디네자드의 재선을 축하하는 입장을 밝혔을 뿐 나머지는 계속 침묵하고 있다. 시아파 성직자의 지위는 호자톨에슬람(이슬람의 증거), 아야톨라(신의 징표), 그랜드 아야톨라로 구분되는데, 그랜드 아야톨라는 최고위 성직자다. 지난 4일 종교도시 콤에 있는 개혁적 성향의 ‘콤 신학교 교사연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당국의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을 비난했다. 반면 보수적인 ‘콤 신학교 교사협의회’는 아직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란의 권력구도가 성직자에서 군부로 이동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군부의 지원으로 이번 위기를 넘기고자 한다. 아마디네자드는 이슬람혁명수비대와 민병대를 지지기반으로 가지고 있다. 하메네이는 군부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하지만 오히려 군부의 힘이 더 막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고지도자의 후계자 논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악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문가회의 의장이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또 다른 후보는 아마디네자드의 정신적인 스승 메스바헤 야즈디다.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급부상하고 있다. 모즈타바는 이번 강경진압의 배후인물로 알려져 있고, 현지에서는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최고지도자를 1인이 아닌 집단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그랜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생전에 살았던 테헤란 북부 자마란 부근의 집을 찾아갔다. 초라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거처를 보면서 왜 이란 지도자들이 계속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지를 새삼 느꼈다. 호메이니는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을 호메이니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유달승 테헤란/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