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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사자의 안녕을 위해 ‘부부젤라’를 불어라

등록 2016-09-12 15:23수정 2016-09-12 15:52

[미래] 세실의 전설
방목지에서 길 잃은 가축은 쉽게 사자의 표적이 된다. 2010년 황게국립공원에서 소를 잡아먹고 있는 사자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방목지에서 길 잃은 가축은 쉽게 사자의 표적이 된다. 2010년 황게국립공원에서 소를 잡아먹고 있는 사자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아프리카에는 약 2만마리의 야생 사자가 산다. 1950년대 약 50만마리였던 걸 고려하면 아주 가파르게 줄었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USFWS)은 최근 남동부 아프리카사자를 ‘멸종위협’으로, 서부 아프리카사자는 이보다 심각한 단계인 ‘멸종위기’로 분류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 사자가 멸종의 나락에 내몰린 건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가축과 그 소유주인 주민들과의 충돌 때문이다. 가축을 해치웠다는 이유로 사자들은 정부 당국이나 주민들에게 앙갚음의 죽음을 당한다. 현존하는 위협만으로도 사자는 사살되기도 한다. 사자 개체 수가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우리 같은 보호론자들은 이러한 위협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몇 년 동안 내 업무는 소나 염소, 당나귀가 사자들에 의해 죽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들어올 때 현장에 출동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사건 날짜와 시간, 위성위치추적장치(GPS) 데이터, 가축 종 등을 파악하고 기록해, 실제로 그 가축이 사자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최종 확인했다. 가축 소유주를 면담하고 사체의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공들여 쌓은 정보들은 나중에 왜 사자가 마을과 농장에 들어와 피해를 일으켰는지 사건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300여건의 보고서를 쭉 읽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의 패턴이 보인다. 사자와의 충돌 지역을 지도에 표시해보면,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잦은 일종의 ‘핫스팟’이 드러난다. 지리적 특성과 관련이 있는데, 대개 보호구역이나 사냥허가 구역에서 가까운 곳이다. 그런 특성을 고려해 인간-사자의 충돌을 줄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15m 코앞에 사자가 있는데
총 없어도 태연한 마사이족
잘 알기 때문에 무서움 없어

10명 모아 ‘사자 감시단’ 조직
우리의 무기는 개, 나팔, 스마트폰
피해는 절반 줄고 사자는 살렸다

케냐와 짐바브웨의 차이

케냐의 암보셀리 지역에는 사자-인간 충돌 방지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기부자 가운데 한 분이 케냐에 가서 그 프로그램을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나는 짐바브웨에 적용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났다.

케냐에서 일주일 동안 그 프로그램의 ‘사자 감시단’으로 일했다. 마사이 모란족이 사자의 존재에 대해서 얼마나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지 보고 놀랐다. 어느 날 아침 모란족 한 사람과 암사자와 새끼들을 걸어서 추적하던 때였다. 불과 15m 가까이에 사자가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무기라곤 노트북과 구슬 팔찌가 전부였다. 다행히 사자가 놀라 달아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텐데, 그는 의외로 태연했다. 음비리카니의 방목지에 갈 적마다 큰 소 떼를 이끌고 가는 소년들도 보았다. 다양한 색깔의 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창을 손에 든 소년들은 소 떼의 행렬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왜 소가 가는 대로 가도록 소를 놔두기만 하느냐?”고 물으면 “위험하니까 소 떼를 데리고 가야지요. 사자가 주변에 있거든요”라고 답했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짐바브웨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아예 소 떼를 몰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물으면 짐바브웨 사람들은 “너무 위험해서 소 떼를 몰 수 없어요. 왜냐하면 사자가 있거든요”라고 대답한다. 똑같은 질문인데도 답변이 다르다. 사람들은 분명히 사자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케냐의 사자 감시인은 커뮤니티에서 고용한 젊은 전사들이다. 전통적으로 사자를 죽이는 방식으로 마을과 집을 지켰다. 그러나 지금의 사자 감시인은 여전히 마을을 지키면서도 사자를 죽이진 않는다. 가축을 습격한 적이 있는 사자에는 전파를 송신하는 목걸이가 달려 있다. 매일 아침 모란족의 소년은 언덕에 올라가 전파수신기로 사자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곤 언덕에서 달려 내려와 이웃들에게 사자가 어디에 있다면서 그 지역은 피해 있으라고 알려준다. 온종일 담당 구역을 순찰하면서 그는 사자의 표적이 되곤 하는 길 잃은 가축을 찾거나 방목지의 목책을 고쳐서 한밤중에도 소 떼가 안전하게 쉴 수 있도록 한다. 이런 활동으로 인간과 사자의 충돌은 꽤 줄었고 사자가 목숨을 잃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제 이 프로그램을 가져와 짐바브웨에 적용하는 게 나의 과제가 되었다.

밤에는 소를 나무 울타리에 가두어 사자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밤에는 소를 나무 울타리에 가두어 사자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긴 방패 사자 감시단’의 청년들이 사자를 몰아내기 위해 부부젤라를 불고 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긴 방패 사자 감시단’의 청년들이 사자를 몰아내기 위해 부부젤라를 불고 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비행기를 타고 짐바브웨로 돌아오면서 왜 두 나라는 사자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두 나라 모두 영국 식민지를 겪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야생동물과 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식민지 관료들이 이에 대응한 방식은 달랐다. 마사이족은 야생동물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이 그들에게 소를 주었고 소를 관리하는 게 그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민지 관료들은 마사이족이 야생동물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보았고, 야생동물 보전 정책은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디지아(지금은 짐바브웨)에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야생동물이 사는 국립공원 구역에서 주민들을 소개시켰고, 국립공원은 주민들에게 일종의 ‘요새’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체포된다, 다만 뭐(사자)라도 요새 밖으로 나오면 우리가 죽일 것이다”라는 선언. 바로 이런 원칙이 삼대째 황게국립공원 주변에서 작동되면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사자에 대한 분노 혹은 신화, 공포가 성장한 것이다. 우선 주민들이 사자를 자주 보고 접해서 사자라는 존재에 대해 익숙해져야 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내 머리를 쳤다.

러브모어 시반다라는 에너지가 충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을 사람 한 명이 나의 오른팔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함께 ‘긴 방패 사자 감시단’을 만들었다. 원래 문제를 일으키는 사자는 가축의 고기 맛을 본 적이 있는 소수다. 그렇다면 그 사자가 누구인지 식별해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면 그만이었다. 인터뷰를 해서 감시단원 10명을 뽑았다. 남성 8명, 여성 2명으로 구성된 감시단은 사자 모니터링을 하는 고된 교육도 이수받았다. 몇 달 뒤, 이제 단원들은 모두 사자를 봤을 뿐 아니라 지피에스를 달면서 사자 몸을 만져 본 경험도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자전거와 함께 지피에스 수신기와 3지(G) 휴대전화 그리고 메신저 ‘와츠앱’이 우리들의 무기였다.

필자(위 왼쪽에서 세번째)와 ‘긴 방패 사자 감시단’의 단원들.  브렌트 스파텔캄프 제공
필자(위 왼쪽에서 세번째)와 ‘긴 방패 사자 감시단’의 단원들. 브렌트 스파텔캄프 제공

월드컵처럼 효과만 있다면…

매일 아침 아내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나는 곧잘 인터넷에 접속해 ‘문제 사자’가 어딨는지 확인한다. 그 사자의 지피에스 위치를 긴 방패 단원들에게 보내주면 가장 가까이 있는 단원이 자전거에 올라 근처로 향한다. 주변에 염소나 소 등 가축이 있는지 확인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사자가 가까이 있다고 알려준다. 어떤 때는 와츠앱을 통해 ‘사자 근접 정보’를 120명이 한꺼번에 받는 경우도 있다. 소문에는 발이 달린 법이어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길을 돌아가고 소 떼들도 위험 지역에서 곧장 빠져나온다. 밤에는 안전을 위해 나무 울타리 안에 소 떼를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안전 구역을 뛰쳐나온 사자가 마을 가까이 다가오면서 감시단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 쫓아내는 경우도 있다. 개들을 이끌고 드럼과 폭죽을 들고 사자들을 안전한 구역으로 쫓아낸다. 총도 없이 부부젤라 하나로 사자에 대응하는 단원들을 보면 신경이 쓰인다. 부부젤라는 남아공 월드컵 때 그 끔찍한 소리 때문에 악명이 높았던 ‘플라스틱 나팔’이다. 아프리카에서 혼쭐이 났던 유럽 축구대표팀처럼 부부젤라가 사자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부부젤라는 매우 효과가 좋았고, 부부젤라를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사자에 의한 가축 피해가 약 50% 줄었고, 이제 아프리카의 오지의 밤은 부부젤라의 소리로 익어간다.

사자 감시단원은 늘어나 아프리카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자를 죽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축은 자기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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