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트로피 사냥꾼에게 희생된 아프리카 사자 ‘세실’의 손주이자 ‘산다’의 새끼인 사자들. 새끼들은 차량 밑 그늘에 다가와 쉬기도 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2016년 4월. 사자 ‘세실’이 죽은 지 아홉 달, 내가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 연구를 시작한 지 9년 반이 된 어느 날, 나는 ‘황게 사자 프로젝트’ 일을 그만두었다. 세실이 트로피 사냥꾼에게 허망하게 간 사건은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구체화시켜주었다. 사자를 위한 많은 일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자들을 위한 큰 목소리뿐만 아니라 사자 보전과 관련한 여러 논쟁점을 격파하는 총체적인 사고도 필요했다. 내 직업을 가지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내가 가진 신념에 한 번의 도약이 필요했고, 내 옆의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우리 자신의 것들을 만들어가야 함을 의미했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한 지역 추장에게 그들의 땅에 살아도 되는지 물어봤었다. 그는 너그럽게 허락했고 보호구역 도로 맞은편에 농장을 지을 만한 땅을 내주었다. 코끼리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하이에나가 가축을 훔치는 곳이었다. 즉, 우리가 도우려는 사람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만나 함께 공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도전적으로 답변하는 결정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사자를 위협하는 사건은 늘 공원(보호구역) 경계부에서 발생한다. 이 말은 내가 예전처럼 황게국립공원 안에 들어가 사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지만, 사자의 생존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밤에 충분히 잘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사자와 함께 보낸 시간이 그리웠다. 여기서 ‘그립다’고 한 것은 아주 절제된 표현이다. 사자에 ‘중독’된 나는 사자를 보지 못한 채 독방에 갇힌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약 공급책’을 잃어버린 헤로인 중독자처럼, 나는 사자가 몹시도 그리웠다.
“얼룩말은 패스”
2015년 11월,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사자 보전 프로젝트 기부자들과 친한 친구 몇 명을 데리고 초원에 나갔을 때였다. 뜨거운 바람이 칼라하리의 모래 알갱이로 작은 토네이도를 만들고, 코끼리와 버펄로 떼가 작은 물웅덩이 하나를 찾기 위해 느리지만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6마리의 젊은 사자 떼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우리도 사자들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사자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사자들이 뭔가를 할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진토닉을 따라주는 사이(기부자들을 위해 종종 이렇게 준비한다), 사자가 곧바로 사냥에 들어가 무언가를 죽일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뒤 두 시간 반 동안 사자들은 버펄로 두 마리와 흑멧돼지 한 마리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 코앞에서 코끼리 새끼 한 마리를 잡았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내 귀에서 끊이질 않을 정도였다. 굉장한 장면이었다. 이 구역의 공원 사파리를 운영하는 업체가 이 소식을 듣고 나에게 사파리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을 해왔다. 몇 주 동안 의견이 오갔고, 사파리를 이끌어 달라는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몇 달이 흘렀다. 나는 내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불현듯 사파리 장비와 카메라, 지프차가 덩그러니 도로 앞에 세워져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관광객들을 데리고 야생 캠프로 들어가야 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사흘 동안 온전히 사자를 보는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었다. 이 사파리를 신청한 사람들은 다른 목적이라곤 없었다. 오직 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우리 사파리의 모토를 이렇게 정했다. “얼룩말 따위엔 차를 멈추지 않는다!”
처음 두 차례의 사파리 상품은 예약을 받자마자 다 팔려나갔다. 일 년 전 ‘놀라운 오후’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 재차 신청한 것이다.
나는 출발 하루 전 캠프로 가서 사파리 여행에 대한 준비가 잘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진토닉도 여러 병 갖다놓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많은 사자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데이비슨 캠프는 로즈우드 나무의 그늘 밑에 쳐진 작은 텐트동이었다. 황게국립공원의 ‘백팬’ 지역에서 약 10㎞ 떨어진 위치였다. 백팬은 사자 세실이 자주 가던 장소 중 하나였다. 버펄로 등 사냥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랄라 야자나무와 흑단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는 넓은 초지였는데, 나는 그곳의 나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간의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세실이 거기 살았을 때부터 아주 많은 사건이 초원을 스쳐 지나갔다. 사자를 쏘아 죽인 트로피 사냥꾼들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부터 사자 프라이드(무리)의 영역 다툼과 권력 교체까지 많은 일이 여기에서 일어났다. 세실 이후에는 부시와 부베지라는 사자가 이곳을 점령했다. 그들 또한 산다(Xanda, 세실의 수컷 새끼)와 형제들과 고통스러운 투쟁 끝에 세실처럼 패퇴해 쫓겨났다. 산다 역시 일주일 전에 다른 수사자들한테 쫓겨났다고 들었다. 그 수사자들은 내가 본 적이 없는 놈들이었다. 백팬으로 가는 길, 나는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프라이드’라고 불리는 사자 무리는 우두머리 수사자들의 싸움으로 지역의 지배자가 바뀐다. ‘산다’를 몰아내고 황게국립공원 백팬 지역의 지배자가 된 수사자.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관광객들은 이튿날 비행편을 타고 도착했다. 땀내 나는 하루를 파하고 술을 한 잔 마실 때(음… 사파리의 전통이다), 눈앞에서 암사자 두 마리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들개 떼가 나타났다. 이튿날 해 뜨기 전에 일어난 우리는 암사자 세 마리(수사자 산다는 쫓겨났지만, 이들은 아직 남아 있었다)가 간밤에 영양 하나를 사냥한 것을 발견했다.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는데, 암사자들의 유별난 행동이 눈에 띄었다. 암사자들이 무언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거 같았는데, 정신없이 영양을 뜯어먹다가도 속도를 늦추고 특정 방향을 주시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관광객들에게 ‘용기 있게’ 말했다. 우리는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그리고 암사자들이 무엇을 신경 쓰는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손안에 든 새 한 마리가 숲속에 있는 새 두 마리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이 속담을 깨뜨려야 했다. 암사자들의 행동은 앞으로 무언가 더 볼거리가 생길 거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떠나지 않은 암사자들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숲속에서’) 나타난 동물은 ‘새 두 마리’가 아니라 ‘수사자 두 마리’였다! 최근 산다를 몰아냈던 새로운 점령자 수컷들이었다. 하지만 산다의 암컷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암컷들은 기르던 새끼가 없었으므로 새끼를 보호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그 지역을 떠나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암사자는 새로운 점령자 수컷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을 뜬다.) 이제껏 암사자들은 ‘공식적으로’ 이 수사자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짓을 보건대, 두 무리는 하루이틀 주변에 머물면서 서로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수사자 한 마리가 막 사냥한 버펄로 한 마리 쪽으로 암사자들을 몰았다. 그리고 버펄로 사체 위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야, 이리 와 봐. 이거 요리할 줄 아니?”
닷새째 되는 날, 일랄라 야자수 밑에서 우리는 두 수사자가 번갈아 암사자와 교미하는 걸 보았다. 암사자에게 산다는 오래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언제쯤 새끼가 나올 수 있을까 계산하고 있었다. 사자의 영역 싸움은 본능적이다. 하지만 트로피 사냥꾼의 수사자 사냥은 이런 자연적 과정을 교란시킨다. 사냥으로 인해 일부가 죽거나 부상하면 수사자 연합의 프라이드는 약해진다. 새로 나타난 침범꾼 사자들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도망친 사자들은 공원 경계구역에서 인간과 충돌을 일으킨다.
결국 우리는 산다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산다는 음비자(Mbiza)라고 불리는 야자나무 숲 20㎞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기서 나는 또다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어미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놓인 사냥감 위에서 몰려드는 독수리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일곱 마리의 어린 사자 새끼들은 더웠는지 우리 차량의 그늘에 달라붙어 쉬기 시작했다. 심지어 손을 뻗어 새끼 한 마리의 머리를 살짝 만져 볼 수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