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인기 사자 ‘세실’이 미국인 치과의사에게 죽기 몇 주 전에 찍은 사진이다. 사냥꾼들은 석궁으로 세실에게 부상을 입힌 뒤 스스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렸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청명한 7월 밤이었다.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경계부에서 위장복을 입은 세 남자가 죽어 있는 코끼리 한 마리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코끼리 사체에서 약 40m 떨어진 곳에 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환하게 뜬 보름달에 금발의 갈기가 반짝였다. 사자의 이름은 ‘제리코’였다. 국립공원 안에 있던 제리코가 냄새를 따라 여기까지 온 이유는 그가 지금 먹고 있는 코끼리 고기 때문이었다. 죽은 코끼리 살점의 강한 냄새가 제리코를 유인했다. 사자는 이미 살덩이를 가져가 먹고 있었다.
꼬박 한 시간 동안 사냥꾼들은 이 매력적인 사냥감을 잡지 않고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조용히 참고 기다렸다. 공원 안쪽, 남쪽 방향에서 무언가를 향해 짖는 자칼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사냥 가이드가 미국인 사냥꾼 고객에게 속삭였다.
“자, 이제 시작입니다.”
큼지막한 그림자가 코끼리 사체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벅저벅 모래더미를 헤치는 소리가 사냥꾼들의 귀에 울릴 정도였다. 또 다른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 사자는 잠깐 으르릉거리며 제리코와 드잡이를 하더니 코끼리 사체 위에 올라타 살덩어리를 뜯기 시작했다. 미국인 사냥꾼은 벌써 석궁의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톡’ 하는 부드러운 소음이 기분 나쁜 정적을 깨뜨렸고, 이어 사자의 신음 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는 이 한 장면에서 그토록 많은 뉴스가 퍼져 나갈지 알지 못했다. 화살을 맞은 사자는 피를 흘리며 움직였고, 무관심의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자 ‘세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위스키 한잔 하러 떠난 사냥꾼들
사냥꾼들은 현장을 떠났다. 위스키 한잔을 마시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캠프로 돌아갔다. 한밤중 어둠 속에서 부상당한 사자를 뒤쫓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세실이 밤새 피를 다 흘리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사냥꾼들은 따뜻하게 데운 아침 식사에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고 랜드로버에 올라탔다. 코끼리 사체 더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세실을 뒤쫓았다. 세실이 지나간 자리에는 빨간 피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덤불 아래서 성난 표정으로 쉬고 있는 세실을 발견했다. 사냥 가이드가 총 한 자루를 건네지만, 미국인 사냥꾼은 손을 내젓는다. 대신 그는 활시위를 당겼다. ‘톡’ 하는 낮은 소리가 다시 한 번 퍼지고, 화살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사자’에게 날아가 그의 생명줄을 끊는다.
월터 파머라는 이름의 이 미국인 치과의사 사냥꾼은 이미 가장 큰 흰코뿔소와 북극곰을 사냥한 전적을 가졌다. 그는 또 한번의 기록이 욕심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상황이 달랐다. 동료 사냥꾼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양 사자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사자 목에 황갈색의 위성위치추적장치(GPS)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이다. 그가 공포에 떨었을 장면을 상상해보라. 월터 파머의 이마에서 맺힌 땀방울이 관자놀이로 떨어진다. 사자 목에 달린 목걸이는 누군가 사자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는 금세 자신이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것뿐이다. 사냥 가이드는 괜찮을 거라고 미국인 사냥꾼을 안심시킨 뒤 빨리 떠나라고 말한다. 사냥꾼은 공황 상태에 빠져 줄행랑을 친다. 사냥 가이드는 세실의 목에서 목걸이를 벗겨내 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그날 오후, 낡은 옷에 군화를 신은 한 남자가 나무에 가서 위치추적장치 목걸이를 집어든다. 단단히 일러둔 터라 그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 목걸이를 가지고 공원 경계부의 도로를 따라 공원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과 남쪽으로 내려간다. 목걸이를 절대 몸에서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물웅덩이 근처의 덤불에 목걸이를 몇 시간 동안 갖다놓는다. 다시 목걸이를 들고 1㎞를 걸어간 뒤, 덤불에다가 반나절 동안 놓아둔다. 또다시 목걸이를 가지고 물웅덩이로 돌아간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사자 연구원들을 속이려고 했다. 사냥꾼 고객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세실이 살아 움직인 것처럼 꾸민 것이다. 이 남자의 상사인 사냥 가이드는 그렇게 속이는 일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7월4일 오전 8시가 좀 넘은 시각, 마지막으로 그는 공원 경계부의 철길로 향한다. 도끼로 목걸이를 박살 낸 뒤 석탄 운송 열차가 지나갈 때 아무도 모르게 던져버린다.
코끼리 고깃덩이 쌓아두고 냄새로 사자 유인한 사냥꾼들 제리코 놔두고 세실 노렸다
세실 목에 걸린 GPS 목걸이 불법사냥 숨기기 위해 여기저기 가지고 다니는데…
세실이 불러온 거대한 변화
7월4일 나는 커피 한잔을 하려고 일어났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세실을 비롯해 사자들의 목걸이에서는 두 시간마다 위치정보를 담은 전파가 나오게 되어 있다. 나는 그 정보가 모이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위치를 확인한다. 다른 사자들은 이상할 게 없었다. 단지 세실에서만 오전 8시 이후 아무런 정보도 수신되지 않고 있었다. 맨 처음 나는 위치추적장치 목걸이의 배터리가 다 된 줄 알고, 세실을 잡아서 목걸이를 교체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해 사자 사냥 쿼터는 ‘0마리’였기 때문에, 나는 세실이 사냥으로 죽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014년에 사냥감이 된 사자 다섯마리 중 네마리가 사냥 제한 나이인 여섯살 이하의 어린 개체여서, 공원 당국은 2015년 사냥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 뒤 사파리 가이드 마이크가 나를 방문했다. 큰 수사자 한 마리가 사냥꾼에게 당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며, 그는 공원 경계 바로 바깥의 앙투아네트 지역에서 일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세실이었다! 나는 곧바로 세실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했다. 공원 당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소총을 소지한 국립공원 요원들이 현장에 달려갔고, 곧이어 탐문 조사를 통해 사자 한 마리가 사살된 사실이 확인됐다. 요원들은 사자의 유골을 수거했다. 한때 늠름한 위용을 자랑하던 수사자였지만 갈비뼈와 척추뼈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곧바로 착수된 조사에서 미국인 사냥꾼의 이름이 월터 파머로 밝혀졌고, 전세계 사람들의 분노를 들끓게 한 뉴스가 이어졌다.
100만달러 이상의 성금이 사자 세실을 연구하며 사자 보전활동을 펼친 ‘와일드크루’(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에 답지했다. 항공사 42곳이 사냥된 야생동물의 모피를 운송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은 아프리카사자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다. 해당 종의 생존에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종 보전에 기여했다는 증빙 없이는 미국인 어느 누구도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사자를 미국으로 가져올 수 없게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거대한 사업을 이루고 있는 ‘통조림 사자 사냥’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야생사자와 달리 인간들에 의해 길러진 이 사자들은 사자 농장에 풀려난 뒤 돈을 낸 사냥꾼들에 의해 죽는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은 이런 종류의 사자들의 수입도 전면 금지했다. 한 사자의 죽음이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용맹한 사자 세실이 남긴 유산은 사자와 사람 두 종의 미래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
글·사진 브렌트 스타펠캄프 황게국립공원 사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