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테헤란 시내에 설치된 코로나19 예방 수칙 포스터 앞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고 있다. 박민희 기자
8200만명이 넘는 중동 최대 인구 국가인 이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8번째 사망자가 나오면서, 테헤란에서도 ‘코로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란 보건부는 23일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2명 늘어 8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란은 중국 이외에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이날까지 이란 코로나19 확진자는 43명이며, 785명이 의심 증상을 보여 검사 중이다.
23일 테헤란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확연히 늘었다. 이란 정부는 이날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20개 주의 각급 학교에 한 주간 휴교령을 내렸고, 전국적으로 영화관, 박물관 문을 닫고 콘서트 공연, 축구 경기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란의 코로나
19 대응은 21일 총선을 전후로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이란 당국이 코로나19에 감염된 2명이 사망했다며 이란 내 첫 확진 사례를 발표한 것은 지난 19일이지만, 이후 며칠 동안 이란 언론에선 21일 열렸던 총선 뉴스가 중심이었다. 21일 기자가 테헤란 시내 중심 호세이니에 에어샤드 모스크를 비롯한 투표소 몇곳을 취재하는 동안 투표소 앞을 경비중인 경찰들과 일부 선거관리위원들이 간혹 마스크를 끼고 있었을 뿐, 투표를 하러 온 유권자들 가운데 마스크를 낀 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국영방송이나 이란 지도자들의 연설도 ‘국가를
위해 투표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할 뿐, 코로나19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22일께부터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거리와 상가에는 갑자기 마스크 착용과 손씼기 등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설명하는 포스터가 곳곳에 등장했다. 상점에선 이미 손소독제나 마스크가 동이 났다. 정부가 정권에 대한 충성과 신뢰 표시로 여겨지는 총선 투표율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투표일까지 코로나19 관련 경고를 제대로 하지 않다가, 총선 이후에야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
다. 이에 대해 당국자들은 “정부가 정직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방어에 나섰다.
이란 내 확진자 숫자 대비 사망률이 20%로 다른 나라에 견줘 유독 높은 데 대해 감염자 수를 은폐했다거나 대응할 의료 체계가 부실해서라는 의혹도 일고 있다.이란 정부는 전국 230여개 병원을 코로나19 치료 전담 병원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미국의 초강력 제재로 의약품 등 인도주의 물품 수입마저 차단된 상황이라 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할 의약품과 장비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테헤란에서도 병원 내 의약품 부족으로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불안이 널리 퍼져 있다. 4명의 확진자가 나온 이란 북부 길란주의 한 간호사는 “우리가 환자 치료의 최전선에 있지만 보호복이나 마스크 같은 기본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수술용 가운만 입고 치료하고 있다”고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될 경우, 경제난과 제재에 가장 취약한 저소득층이 지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코로나19의 진원지는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종교 도시 곰(Qom)이다. 사이드 나마키 이란 보건부 장관은 23일 “역학조사 결과 19일 곰에서 처음 사망한 환자는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고 밝혔다. 이 사망자가 최초 감염원으로 중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귀국해 곰에서 바이러스를 전파했다는 것이다.
곰은 모스크와 종교학교 등이 몰려있는
시아파의 성지다. 이란 전역을 비롯해 주변국가의 시아파 신자들이 성지순례차
연중 내내 찾는
곳이라,방문객들을
중심으로 이란과 중동 각국에 코로나19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서 이란인 또는 이란을 여행하고 온 확진자가 발견된 가운데, ‘이란발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이웃국가들이 이란과의 국경을 폐쇄하거나, 이란과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 터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아르메니아가 이란과 통하는 국경출입국 검문소를 닫았다.
테헤란/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