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24일(현지시각) 수도 테헤란에서 한 커플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테헤란/신화 연합뉴스
이란의 ‘코로나19’ 확산 진원지로 지목된 종교도시 곰에서 이달에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50명이나 발생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을 알고서도 총선(21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관련 사실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의 보수파 정치인으로 곰이 지역구인 아마드 아미라바디 파라하니 의원은 24일 “곰에 250명이 넘는 이들이 (코로나19 감염으로) 격리 수용됐다”며 이렇게 밝혔다고 이란 반관영 <이란노동통신>(ILNA)가 보도했다. 파라하니는 특히 사망자 수가 50명에 달한 것은 지난 13일 무렵이라고도 밝혀, 정부가 관련 사실을 은폐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란은 중국을 제외하고 코로나19로 숨진 환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특히 곰의 사망자가 50명에 달한다는 것은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사망자 수는 물론, 확진자 숫자를 훨씬 능가하는 수치다. 이란 정부는 ‘사망자 50명’ 보도를 적극 반박했다. 이라즈 하리르치 보건부 차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파라하니 의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이날까지 확진자가 61명, 사망자는 12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지난 19일 코로나19에 감염된 2명이 사망했다고 첫 확진 사례를 발표한 바 있다.
파라하니 의원의 폭로는 이란 당국이 정권에 대한 충성과 신뢰 표시로 여겨지는 총선 투표율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투표일까지 코로나19 관련 경고를 제대로 하지 않다가, 총선 이후에야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실제로, 이란 정부가 첫 확진 사례를 발표한 지난 19일 이후에도 이란 국영 방송 보도나 이란 지도자들의 연설은 ‘국가를 위해 투표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할 뿐, 코로나19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이란 정부는 이에 대해 “정부가 정직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방어전을 펴오던 터였다.
‘50명 사망설’에 대한 이란 당국의 적극 부인에도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진원지로 지목된 종교 도시 곰은 모스크와 종교학교 등이 밀집된 시아파의 성지여서, 이란 전역을 비롯해 주변국의 시아파 신자들이 순례를 목적으로 연중 내내 찾아오는 곳이다. 주변 중동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와 레바논에서 이란인 또는 이란을 여행하고 온 확진자가 발견된 데 이어, 이날 쿠웨이트에서도 처음으로 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 3명이 나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이란 동북부 시아파 성지 마슈하드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 정부는 지난 19일 이란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발표가 나온 뒤 국경 출입국 검문소를 차단하는 한편, 22일부터 마슈하드 성지 순례에 나섰던 자국민 700여명을 특별기로 철수시킨 바 있는데,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은 이 특별기로 귀국해 격리·관찰 중이던 성지순례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도 이날 이란을 여행한 이력이 있는 자국민 1명이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란발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이웃 국가들이 이란과의 국경을 폐쇄하거나 이란과의 항공편 운항 중단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 터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아르메니아 등이 속속 이란과 통하는 국경출입국 검문소를 닫았다.
이정애 기자, 테헤란/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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