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의회가 새 대통령을 선출한 20일 콜봄보 의회 건물 앞에서 군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대통령이 국외로 도피한 스리랑카에서 새 대통령으로 라닐 위크레메싱게(73) 총리가 선출됐다. 그러나 시민들은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대표적 구체제 인물로 보고 사임을 요구해왔기 때문에 혼란은 쉽게 수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 국회는 20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을 대신할 새 대통령으로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선출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는 총 134표를 얻어 82표에 그친 야권의 달라스 알라하페루마 후보를 제쳤다. 임기는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인 2024년 11월까지다. 앞서 지난 9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뒷문으로 달아나 군용기를 통해 몰디브로 도피했고 이후 싱가포르로 이동해 이메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통령 국외 도피 이후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아왔다.
위크레메싱게는 1970년대에 정계에 입문한 뒤 6차례나 총리를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난과 이로 인한 대규모 시위로 고타바야 라자팍사 당시 대통령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가 총리에서 사임하자 지난 5월 9일 후임 총리로 임명했다.
그의 총리 취임 이후에도 스리랑카 경제는 계속 악화됐고 연료와 필수 의약품마저 부족한 사태가 계속됐다. 5월 19일에는 국채 이자 지급 유예 기간마저 끝나 공식적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스리랑카 정계를 20년 가까이 장악했던 라자팍사 가문에 주로 향했으나,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총리인 그에게도 향했다. 반정부 시위대가 최근 점거했던 장소에는 대통령궁과 대통령 관저 뿐 아니라 총리 관저도 포함됐다.
그는 대통령 당선 뒤 의회에서 스리랑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야당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진 스리랑카 경제 회복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협상을 하고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되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 앞에 놓였다. 그러나, 시위대는 그의 사임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대규모 시위와 정치 불안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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