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보라 화산 폭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다. 4200m 높이의 탐보라 산은 폭발 직후 2851m로 줄어들었다. 100㎥ 분량의 용암과 화산재가 솟구친 것으로 추정된다. 황산가스가 44㎞까지 퍼졌다. 화산재가 한동안 하늘을 뒤덮어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듬해인 1816년엔 여름이 없었다고 한다. 왼쪽은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이고, 아랫쪽은 인공위성에서 내려다 본 화산구 모습이다. 출처/<비비시(BBC)
[아시아아시아인] 190년 만에 깨어나는 ‘탐보라 문명’
1815년 4월10일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의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붉은 용암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2700㎞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닷새 동안 폭발이 이어지면서 4천t의 화산재가 비처럼 쏟아졌다. 폭발 직후 1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8만2천여명은 기후 변화와 굶주림, 질병으로 숨졌다. 190년 넘게 화산재에 묻혀 있던 탐보라의 유물이 최근 발굴됐다. 인적이 닿지 않은 밀림지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도자기와 청동, 유리 유물들은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발굴팀이 ‘동양의 폼페이’를 찾아냈다고 흥분할 정도다. 발굴팀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졌던 고대 로마의 폼페이처럼 탐보라에도 ‘위대한 문명’이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청동·유리 유물 등 원형 보존
‘위대한 문명’ 존재할 가능성 발굴팀은 이들 유물의 디자인과 장식으로 미뤄, 탐보라가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활발하게 무역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발굴팀에 참여한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하랄구두 시구르드슨 교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탐보라는 꿀과 말, 물감, 향약재로 유명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탐보라 사람들은 아주 부유한 무역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마을을 방문했던 이들의 기록을 보면, 탐보라 사람들은 캄보디아나 라오스 말과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몬크메르어족에 속하는 이 언어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동남쪽으로 흩어졌다. 피터 레이프 워싱턴대 교수는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기 전 동인도 지역의 일부로서 탐보라를 고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굴팀은 내년부터 레이더를 이용해 3m 깊이의 화산재에 묻힌 탐보라의 유적을 추적할 계획이다. 탐보라에서 왕궁을 찾아내 ‘탐보라 문명’의 실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탐보라 문명이 화산재 속에 묻혀 있다면 당시의 모습을 타임캠슐처럼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왕궁’이나 ‘문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화산재 밑에 있는 유적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탐보라에서 숯덩이로 발견된 두 구의 주검과 집의 흔적은 당시의 참혹했던 비극을 생생히 증언한다. 한 주검은 큰 칼을 쥔 채 부엌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견됐다. 다른 주검은 출입문 밖에서 누운 모습으로 발굴됐다. 집은 숯이 되어 까맣게 변했지만, 원래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통나무 들보와 대나무 판자벽의 흔적이 역력하다. 과학자들은 이런 비극이 탐보라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탐보라 화산은 죽은 것이 아니라 쉬고 있을 뿐이다.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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