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7일 첫 시동을 건 카슈미르 ‘평화의 버스’. 위태한 고원도로와 뿌연 흙먼지를 뚫고 1년을 달렸지만 아직 평화는 멀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시아아시아인] 인도-파키스탄 개통 1년
관료주의·무장단체 위협 이제껏 승객 8백여명
“그래도 희망싣고 달려”
관료주의·무장단체 위협 이제껏 승객 8백여명
“그래도 희망싣고 달려”
지난해 4월7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 버스 한 대가 출발했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무자파라바드까지 가는 이 버스엔 19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분할하는 바람에 생이별을 했던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고원의 먼지를 뚫고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호와 눈물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58년 만에 재개된 이 버스길이 ‘카슈미르 평화의 행진곡’이 되기를 기대했다. 인도가 지금까지 파키스탄과 치른 세 차례의 전쟁 중에서 두 번이 카슈미르 영유권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는 애꿎게도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라는 오명을 얻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비비시(BBC)>에 “이날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우정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우정과 카슈미르의 평화를 상징했던 이 버스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예전같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이 버스길의 실효성과 카슈미르 평화의 한계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인도 정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지금까지 이 버스를 타고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를 방문한 인도인은 311명에 불과하다. 같은 길을 따라 인도를 방문한 파키스탄인 역시 505명에 그쳤다.
양쪽의 방문객이 이처럼 적은 이유는 인도와 파키스탄 특유의 관료주의와 까다로운 신원조회 절차 때문이다. 인도령 카슈미르의 우리에 사는 모하메드 딘(71)은 <비비시>에 “파키스탄에 사는 아들을 보려고 6개월 전에 신청서를 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에게 ‘탈 수 없는 버스’는 또다른 비극일 뿐이다.
카슈미르에 진을 친 무장단체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버스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도 이산가족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는 이들로부터 버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경찰을 탑승시키고 있으나, 승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엔 힘이 딸린다. 무장단체들은 지금도 버스를 공격하겠노라고 공언하고 있다.
버스 타기가 이처럼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의 열정도 식어가고 있다. 여행신청서를 받으려고 폭염 속에서도 몇시간씩 기다리곤 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 정보당국자는 <에이피(AP)통신>에 “사람들이 기다림에 지치면서 초기의 열정이 사그라든 게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에게나 여행을 허가할 순 없다”고 말했다.
희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성과는 미미하지만, 지금도 카슈미르를 달리는 버스에는 평화를 향한 희망이 담겨 있다. 카슈미르대의 한 교수는 <에이피통신>에 “이 버스는 카슈미르 평화에 대한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버스는 더디지만 계속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3년째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파키스탄을 덮친 대지진으로 2개월 가까이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던 이 버스는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카슈미르를 달린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30일 스리나가르를 출발한 버스엔 4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지난해 10월 파키스탄을 덮친 대지진으로 2개월 가까이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던 이 버스는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카슈미르를 달린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30일 스리나가르를 출발한 버스엔 4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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