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길 실험과 도전] 2부 중국을 흔드는 7가지 변화
⑥ 4억 네티즌
⑥ 4억 네티즌
민족주의는 중국 인터넷의 또다른 얼굴이다. 지난해 9월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해역에서 일본 해양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한 뒤 일본이 중국 선장을 체포해 국내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나서자 중국 인터넷에선 반일 여론이 분출했다. 반일시위가 중국 여러 도시에서 벌어져 일본계 백화점과 상점들이 공격을 받았는데, 시위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조직됐다.
1999년 5월 코소보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가 유고연방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을 오폭해 외교관 3명이 숨진 데 항의해 중국 해커들이 미국 사이트 공격에 나선 것은 중국 인터넷 민족주의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민감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인터넷에선 민족주의, 애국주의 여론이 빠르게 결집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8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봉송에 나선 성화가 티베트 독립 지지 시위대의 저지로 꺼지는 수난을 겪은 뒤, 중국 누리꾼들은 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조직해 큰 압력을 행사했다.
‘온라인 애국주의’는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에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중-일 댜오위다오 갈등 당시 중국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으면서도 고위급 교류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등 일본에 대해 예상보다 강도 높은 조처를 취한 것은 반일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중국 정부는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누리꾼들의 분노가 반정부 정서로 바뀔 것을 우려해 강경책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리꾼들의 압력을 내세워 상대국의 양보를 받아내기도 한다.
중국의 젊은 세대는 국내 문제에서는 정부에 비판적이지만, 외교정책에서는 다른 국가들의 중국 비판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베이징 대학가의 좌파 서점 우유즈샹의 사이트(www.wyzxsx.com/)나 톈야, 강국논단, 환구망 등을 통해 결집하는 민족주의 세력들은 미국 중심의 국제기구를 불신하고, 서구와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을 의심한다. 대만의 전 외교장관인 천탕산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인터넷을 통해 변화하는 민주적 중국을 기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재난으로 변할 수도 있다”며 “민족주의 세력이 많아지면 민주적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 정부도 사회주의 이상과 멀어진 사회를 단결시킬 이념적 접착제로서 민족주의를 활용하지만, 이런 정서가 과도하게 상승해 실제로 국제관계를 악화시키거나 비난의 화살이 정부를 향하지 않도록 하느라 조심스럽다. 지난해 반일시위 도중 ‘부정부패 해결’ 등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가 등장하자 당국은 곧바로 인터넷의 반일시위 관련 소식을 차단했다. 급성장하는 중국 누리꾼의 힘은 중국에도, 세계에도 양날의 칼이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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