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내가 트럼프의 조언자라고 하는 것은 거짓(fake)이다.” 지난달 중순 중국 전문가인 마이클 필즈버리(72) 미국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나름 ‘절박한’ 호소문을 자신의 트위터·페이스북에 여러 차례 올렸다. 세계 최대 강대국 새 집권자와의 관계라면 털끝만한 것마저 부풀릴 욕심도 날 텐데 그는 되레 정면 부인하고 나섰다. 왜였을까?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많은 매체들은 그를 트럼프의 조언자라 일컬었다. “또 다른 트럼프의 조언자는 전직 국방부 관료이자 <백년의 마라톤> 저자 필즈버리다.”(11월11일, 워싱턴 포스트) “트럼프 인수위의 조언자인 필즈버리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비판한) 보고서를 당선자도 승인했다고 말했다.”(11월14일, 블룸버그) “중국 전문가로 트럼프에게 조언해왔으며 트럼프를 ‘전략의 천재’라고 부른 필즈버리는 ‘그(트럼프)는 중국을 흔들어놓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12월5일, 시엔엔) “필즈버리처럼 현재 동아시아 및 중국 관련 조언자로 거명되는 이들은 대중국 강경론자들이다.”(1월4일, 포린 폴리시) 지난 1월12일 베이징에 온 필즈버리의 판구연구소 강연이 주목을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10분가량 강연했다. “오늘 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자(직함)를 쓰고 온 게 아닙니다. 저는 학자입니다”라고 운을 뗐지만, 그의 말은 무게가 남달랐다. 1970년대 랜드연구소 시절 중국과 정보·군사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주목받은 필즈버리는, 이를 채택한 레이건·부시(아버지) 행정부의 국방부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이튿날 홍콩 <명보>가 강연 내용을 중국면(13면) 머리기사로 다룬 것은 당연해 보였다. <명보> 기사엔 ‘트럼프가 달라이 라마의 접견 요청을 거절했다고 (그의) 모사가 폭로했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실제로 필즈버리는 강연에서 “달라이 라마가 인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트럼프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받아들여야 할까?”라고 말했다. 중요한 대목이었다. 대만 문제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트럼프가, 티베트 문제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전선을 넓히지 않는다는 뜻인가? 며칠 뒤 인도 유력지 <더 힌두>도 <명보>를 인용해 기사를 냈다. 홍콩 매체의 중국어 기사엔 아무 반응이 없던 필즈버리가, <더 힌두>의 영어 기사에는 ‘거짓 보도’(fake news)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영어권 독자, 곧 미국 독자를 의식하는구나 싶었다. <더 힌두>가 저지른 실수는, 필즈버리가 강연이 아니라 별도의 티브이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 관련 발언을 했다고 한 것이었다. 필즈버리는 강연 때 발언 여부는 언급 않고, 티브이 인터뷰에는 그런 대목이 없다고 우겼다. 자신은 트럼프의 조언자가 아니라는 것도, 이 기사를 부정하면서 내놓은 강변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달라이 라마를 만날지 여부는 나도 모른다”며 기사 취소를 요구했다. <더 힌두>는 기술적 실수를 인정했지만, 그의 발언 자체와 ‘조언자’라는 호칭은 취소하지 않았다. 사실 필즈버리는 판구연구소 강연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한국 배치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부르면서, “사드 문제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트럼프)는 계속 (추진)해야 할까? 아니면 줄여야 할까? 여러분이 다 아시듯이 (중국) 해방군은 반대한다. 왜냐하면 사드의 (관측) 범위가 1800마일(약 2900㎞)이어서 중국까지 이른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수치는 한·미 당국이 주장하는 최대 탐지거리를 훌쩍 넘는 것이어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미리 얘기해두지만, 이건 ‘거짓 보도’가 아니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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