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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선학교라는 낙인

등록 2023-12-28 19:13수정 2023-12-29 02:37

일본 정부의 조선고급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15일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서 500번째 ‘금요행동’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2013년 5월부터 10년 넘게 매주 이곳에 모여 “전대미문의 부당한 민족차별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일본 정부의 조선고급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15일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서 500번째 ‘금요행동’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2013년 5월부터 10년 넘게 매주 이곳에 모여 “전대미문의 부당한 민족차별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특파원 칼럼] 김소연 | 도쿄 특파원

16년 전 30대 초반의 재일동포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라도가 고향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부였다. 초·중·고교를 조선학교에서 다녔고, 졸업 뒤 조선대학에 들어갔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조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학 생활 중 영어 공부에 푹 빠지면서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몰래 조선대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강행했다. 자신의 부모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녀는 통역 일을 하다가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그녀는 아주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이지만 늘 삶을 깊이 있게 돌아보며 산다고 말했다.

그녀를 취재하면서 재일동포의 복잡한 상황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16년 전 그녀처럼 지금의 재일동포 중에는 이미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조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 ‘조선’의 말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80년 가까이 고통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다.

조선학교의 시작부터 그랬다. 1945년 8월 해방 뒤 일본에 남게 된 60만명의 동포는 자식들이 조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1948년 일본 정부와 연합군사령부가 일본 전역에 500개 이상 설립된 조선학교 폐쇄를 명령했고, 동포들의 강한 저항에도 대다수가 사라지게 됐다. 1957년 북한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지원이 시작되면서 조선학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부터 북한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지난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선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500번째 ‘금요행동’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4월 고등학교 수업료를 국가가 부담하는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시작하면서 조선학교만 쏙 뺐다. 총련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 차원에서 조선학교를 차별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낙인을 찍은 셈이다. 조선학교·조선대학 학생들, 학부모, 일본 시민들이 매주 금요일 항의 집회를 하는 ‘금요행동’이 벌써 10년째다. 이날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분노한다”고 말했다. 더 많이 행복해야 할 아이들 마음속에 차별·배제·분노의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조선학교에 대한 접근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유엔에서도 이미 일본 정부를 향해 “차별을 시정하라”고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가 실현된다면 일본은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 호소는 한국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할 것입니다.”

지난 18일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책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에서 호소한 내용이다. 책이 나온 지 11년이 지났지만, 한·일 모두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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